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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개성 만월대 유적에서 함께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남북 역사학자들의 모습. 2007년부터 시작됐던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는 2010년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대북 제재조처로 중단된 바 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남북 사이에 ‘역사인식 연합’이 이뤄져야 실질적인 ‘남북 연합’도 이룰 수 있다”며 남북 사이의 역사 교류가 중단 없이 꾸준히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태헌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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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책 미래를 열자
④ 남북 역사교류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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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 전체 보는 역사인식 필요
차이점 인정하며 상호공존하는
‘남북 역사인식 연합’ 지향해야
정부는 제도·재정·인력 지원을 북한의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가 시작된 2007년, 사업의 남쪽 주체인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여러 차례 개성을 드나들었다. 그 무렵 북쪽 개성 세관원들은 우리를 ‘만월대 선생님들’이라고 불렀다. 발굴 초기, 북쪽의 여성 세관원이 물었다. “그런데 만월대는 왜 파는가요?” 일반인 입장에서 남쪽 사람들까지 와서 하는 발굴조사가 의아스럽기도 해서 현실적 효용성을 묻는 솔직한 질문이었다. 고려를 이해하려면 고려 궁궐의 구조를 알아야 하고 남북이 공동으로 하는 발굴의 의의는 어쩌구~ 하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얼굴이 익자 질문이 바뀌었다. “뭐 멋진 게 나왔습니까? 고려청자라도?” 우리가 보는 고려청자는 대부분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만월대처럼 궁궐이 화재로 소실된 뒤 땅속에 파묻힌 청자들은 지압으로 깨지게 마련이다. “깨진 조각이 많이 나왔네요.” 실망한 얼굴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도라산출입사무소의 남쪽 세관원들도 묻는다. “금관이라도 나왔습니까?” 금관이 만월대에서 나올 리가? 하긴 우리의 ‘국민 문화재’는 역시 찬란한 신라 ‘금관’이다. 하여간 매번 청자 나왔냐, 금관 나왔냐며 남북 세관원들의 닦달을 교대로 받았다. 그게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오는 역사학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매하신 역사학은 어디다 쓰나. 그에 대해 에드워드 핼릿 카가 책 한 권(<역사란 무엇인가>)으로 답했을 정도이니, 여기서는 “어제의 과제를 해결 못하면 내일의 업보가 된다” 정도로 답해두자. “남북 역사학 교류는 왜 하나?”라고 묻기도 한다. 올해로 분단된 지 67년, 그러나 그 이전 5천년은 역사를 공유했다. 때문에 역사학은 남북교류를 해야 온전한 연구가 가능한 학문이다. 남한의 고구려 박사, 북한의 신라 박사, 고려의 수도 개경에도 못 가는 남한의 고려사 연구자들을 생각해보라. 남북교류가 없으면 그 학문이 온전할 수가 없다. 동북공정까지 겹쳐 발해 연구자는 외국사 전공자로까지 취급되는 것 아닌지. 다르더라도 민족사 전체를 함께 보는 역사인식의 훈련이 되지 못하면 설령 통일이 되어도 통일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늘 받는 질문. “남북 역사관이 통일이 되겠어요?” 물론 어렵다. 남북의 역사 인식에는 차이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식민지배가 우리나라를 발전시켰다고 하는 역사인식을 가진 이들과도 한 하늘 아래 살고 같이 만나고 밥 먹는다. 북과는 왜 안 되겠는가. 남북이 6·15선언에서 합의한 것도 연합제와 연방제의 공통점을 찾아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서로가 차이 속에 공존하는 ‘남북연합’ 단계를 통일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역사인식이라고 왜 남북이 연합을 못하겠는가. 통일의 첫 단계가 상호공존이듯이 역사인식 또한 공통점 위에서 차이를 공존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식민사관까지도 소화하는 다양성의 폭을 북쪽의 역사인식에도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 역사학자가 만나 밥 먹고 학문적으로 사귀어야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나의 생각을 그가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인식 연합을 위한 기초이고 남북역사학 교류의 역할이다. 6자회담의 최대 성과인 9·19합의만 제대로 지켜도 핵문제 해결, 평화협정에 이어 남북연합도 먼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남북의 ‘역사인식 연합’ 없는 ‘남북연합’은 사상누각이다. 부디 차기 대통령은 법제도적 통일뿐 아니라 남북의 역사인식 연합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해, ‘역사통일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야심을 가진 분이기를 고대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는 사람 막지 말고 오는 사람 쫓지 말 것이며 법·제도, 재정, 인력 등 인프라를 구축해 남북 역사학 교류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면 된다. 필자는 이를 위한 실행파일을 <역사비평> 99호에 실은 글 ‘남북 역사인식 연합을 위한 남북 역사학 교류’에서 나름대로 제시했다. 화해협력기, 평화공존기, 남북연합기의 단계마다 남북 역사학 교류 중점 전략사업을 선정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지원해 남북 역사인식 연합을 위한 기반과 성과를 축적하자는 것이다. 내년 2월, 부디 눈 밝고 귀 밝은 정부가 출범하길 바란다.<끝> 정태헌/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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