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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02 19:13 수정 : 2013.01.31 11:08

이 거대한 기계는 초지기다. 거대한 롤이 빠르게 회전하며 종이를 만들어낸다. 그림은 실제 초지기와 다를 수 있으며, 기계 뒤쪽의 나무 는 작가가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소설가 김중혁에게는 ‘발명가’라는 별명이 자주 붙습니다. 창작도 창조의 한 갈래라는 점에서 모든 작가는 발명가이겠지만 유독 김중혁 작가에게만 이런 별명이 생긴 이유는 소리와 도시, 기기 같은 기존의 사물들을 뚝딱뚝딱 뜯어내고 오려내고 다시 땜질하는 그의 글들이 어떤 기계의 발명과 흡사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기계나 기계적인 메커니즘에 호기심 가득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김 작가가 상상이 아닌 진짜 공장을 찾아갑니다. 발전과 진보, 속도로만 설명할 수 없는 공장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새 연재 에세이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에서 만나보시지요.

공장은 나를 가로막는
높은 벽이었고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다

나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인구가 채 10만도 되지 않았고 시내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도 택시비가 기본요금밖에 나오지 않는, 작은 도시였다.(생각해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택시를 타본 적이 거의 없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다녔고, 조금 멀다 싶으면 자전거를 탔다. 음, 택시가 있긴 있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작다는 건 지금의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자랄 때는 작다는 걸 알지 못했다. 큰 걸 봤어야 내 것이 작다는 걸 알 텐데, 작은 도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으니 비교 대상이 없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무척 크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는 아주 멀게 느껴졌고, 동네는 너무 커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소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알겠지만 거기선 꿈을 가지기가 참 애매하다. 어떤 꿈을 키워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야망을 펼쳐 나가기엔 뭔가 좀 어정쩡하다. 일단 보이는 게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점들이 있고, 조금 더 멀리 보면 논밭이 있고, 아주 멀리 보면 공장이 있다. 사람이란, 보이는 걸 꿈꾸게 마련이어서 세 겹의 세계 속에 둘러싸인 채로는 다른 걸 꿈꾸기가 쉽지 않았다. 잘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 속에 있었고, 텔레비전 속 세상을 꿈꾸기엔 너무 멀어 보였다. 공장의 굴뚝 너머에 텔레비전이 있었다.

공장은 나를 가로막는 높은 벽이었고,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조금이라도 삐뚤어진다 싶으면, 반 등수가 조금이라도 내려간다 싶으면 ‘공부 당장 때려치우고, 공장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우라’는 말을 하셨다. 이상하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서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사를 조이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사를 조이고, 풀고, 조이고, 풀고, (도대체 어떤 공장을 연상한 걸까) 그렇게 계속 반복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런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를 세게 흔들어 잡념을 떨친 다음 공부에 매진하였다. 공부에 매진해도 집중력은 오래가지 못했고, 성적이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라면, 어쩌면, 공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버지도 젊은 시절 공장에 다녔고, 사촌 형들 역시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공장에 처음 가 본 것은 20대 중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던 때였다. 정확히 어떤 물건을 만들던 공장이었는지는 잊어버렸는데 - 아마도 농기구를 만들던 공장이었던가 - 공장의 풍경은 지금도 기억과 감각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공장은 엄청난 소음으로 꽉 차 있었고, 공기 중에는 묘한 냄새가 떠다녔으며, 기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벨트 위에서는 제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소음과 냄새와 움직임이 내게는 생산의 교향곡처럼 들렸다. 어찌나 일목요연하고 일사불란해 보이던지…. 공장에서는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고 있었다. 소음이 리드미컬하게 들렸고, 화학약품은 향기롭게 느껴졌다. 원료를 넣으면 어찌 되었든 제품이 만들어졌다. 나는 공장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는 지구라는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20대 중반에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소설가란 끊임없이 거짓말을 생각하고, 그 이야기들을 종이에다 그럴듯하게 적는 사람이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소설을 썼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는 그를 살렸다 죽였다 했다. 고통스러운 적도 많았지만 즐거울 때가 더 많았다. 소설놀이에 빠져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가상의 세계를 휘젓고 다녔다. 아침이 되면 그 모든 일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밤을 새우고 내다본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실질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콤플렉스에 빠졌다. 왜 나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줄 수 없는 것일까. 외투를 만들거나 보일러를 만들거나 컴퓨터를 만들거나 안경을 만들거나 가방을 만들어서 직접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것일까. 소설가가 되고 난 다음에도 그런 고민을 자주 했다. 내 소설은 어떤 ‘물건’이고, 어떤 ‘제품’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은 나름의 답이 생겼다. 소설이 어째서 필요한지 알게 됐고, 글이 왜 중요한지도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보일러가 고장났을 때 내가 전화로 누군가를 부르듯, 인생이 고달픈 누군가가 내 소설을 펼쳐들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공장에서 돌아온 누군가가 피곤한 몸을 자리에 누인 다음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엎드려 낯모르는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내 소설을 펼쳐들 것이다.(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정말 그랬다면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겠지!) 나는 글을 쓰는 일이 공장에서 하는 일보다 우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공장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보다 구체적이며 직접적이고 의미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어린 시절의 ‘공장공포증’에서 벗어나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공장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공장과 공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나이를 (진작에) 넘겼고, - 공장과 공부를 아울러야 진정한 ‘대장부’가 되는 것을! -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며 ‘아, 이런 훌륭한 물건들을 생산하고 계시는데, 저는 어젯밤 집에 틀어박혀 쓸데없는 거짓말이나 만들고 있었지 뭡니까’라는 한탄을 하는 시기도 이미 다 지났으며, 공장에 갔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공장을 통째로 살 수도 있는 재력을 지니게 된데다(하하, 이건 농담),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산품들을 어지간히 써 본 사람으로서 물건에 대해 할 말이 많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뛰어난 공장탐방기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알고 있으며,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공장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화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자신은 없다. 하루키의 글보다 재미있을 자신도 없고, 하루키보다 더 꼼꼼하게 취재할 것 같지도 않다. 책 속 일러스트를 담당한 안자이 미즈마루처럼 뛰어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의 공장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큰 기대는 마시고, 느긋한 마음으로, 함께 공장을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중혁 소설가


종이와 나무의 신이 여기 있다면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① 제지공장

첫번째 장소로 제지공장을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꼭 한번 제지공장에 가보고 싶었다. 그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죄책감이 결합된 이상야릇한 감정이었다. 작가란, 특히 소설가란, 종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종이를 가장 낭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들이야 절대적인 종이 소비량이 적지만 (아, 출판된 책의 종이는 적지만 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버리는 종이는 무척 많을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들은 수많은 종이를 소비한다. 이제 막 출간된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자신의 책을 만지고 있으면, 뭔지 모를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과연 내가 쓴 작품이 이렇게 많은 종이를 낭비해도 괜찮은 것인지, 애꿎은 나무만 작살내는 게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책을 낸 소설가들끼리 만나면 그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책을 냈다고 축하할 일이 아니야. 우리 책 낸 사람들끼리 산에 올라가서 나무나 한 그루씩 심고 오자.” 말을 꺼낸 사람은 농담으로 한 것이겠지만 듣는 사람은 가슴이 뜨끔하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과 죄책감이 결합된
이상야릇한 감정이었다

종이를 포기하기는 힘들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종이를 썼을까 생각해보면 기가 막히다. 교과서에다 수많은 낙서를 했고, 잘못한 일이 많아서 공책 가득 반성문을 자주 썼고, 연애편지를 쓰며 참 많은 종이를 버렸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보고서를 자주 썼으며, 내가 쓴 소설을 프린터로 출력해서 고치고 또 고쳐 가며 완성했다. 잡지사에 다녔고, 책을 여러 권 냈고, 좋은 종이를 탐했으며, 쓰지도 않을 노트를 사 모았다. 만약 사후 세계에 ‘종이와 나무의 신’ 같은 분이 계셔서 종이 낭비를 꾸짖고 매로 다스리신다면, 나는 찍소리 못하고 수십년 동안 두드려맞아야 할 것이다. ‘종이와 나무의 신’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네 죄를 네가 알고, 앞으로는 종이를 멀리할 것이냐?” “종이와 나무의 신이시여, 그런데 사후의 세계에도 종이가 있습니까?” “뭣이라?” “사후의 세계에도 종이가 있다면 저는 죽도록 계속 매를 맞더라도 종이를 쓰겠습니다.” “아니, 저런 고얀 놈을 보았나. 저놈을 나무 곤장으로 매우 쳐라.” 일단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종이에다 적고, 종이에 적은 걸 고쳐 가면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오랫동안 거쳐온 사람으로서, 종이가 없는 삶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종이를 낭비하면서 생각을 발전시킬 것인가, 생각을 낭비하면서 종이를 절약할 것인가. 딜레마다.

종이와 나무의 신이 있다면
나는 찍소리 못하고
수십년동안 두드려 맞을 것이다

제지공장의 숙명도 비슷한 것 같다. 고대 이집트의 커다란 수초 ‘파피루스’에다 문자를 적기 시작한 인류는 석판, 밀랍, 가죽, 종이에다 수많은 글을 남기며 진화해왔다. 인간의 진화를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무를 잘라내고,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여 종이를 건조시키고, 펄프를 표백하기 위해 많은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글씨를) 쓰기 위해 (나무를) 부수는 일은 옳은 일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제지공장 내부의 작은 전광판에는 붉은색 숫자가 깜빡이고 있는데, 그 숫자는 종이가 생산되는 속도를 표시한 것이었다. 시속 몇 킬로미터로 종이가 달려나오는가, 혹은 나무가 얼마나 빨리 사라지고 있는가. 그 숫자는 종이의 생산 속도라기보다 인류의 딜레마 수치 같기도 했다. 어쩌면 모든 공장의 원리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공장은 인간을 위해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인간의 진화를 위해 더 많이 파괴하고, 더 빨리 생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제지공장 입구에 쌓여 있는 펄프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얀색 파도의 물결 같기도 하고, 나무의 내부 같기도 하고, 모래로 쌓은 성 같기도 했다. 폐지를 모아 이렇게 재활용 펄프로 만들어 둔다.
복잡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공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다. 가는 길에 마침 비가 내렸고,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 한낮의 기차는 운치가 있었다. 공장이 있는 곳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이었는데, 덕분에 장항선 기차를 처음으로 타보게 되었다. 휴대전화로 장항선 노선을 검색하다가 뜻밖의 선을 하나 발견했다. 장항역을 지나면 철길이 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종점인 익산으로 향하는 철길이고, 또 하나는 제지공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봤더니 제지공장에서 철도청에 요청해서 만든 철길이었다. 철도청에 요청하고 승인을 받으면 직접 철길을 깔 수 있다고 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종이가 이 철길을 따라 서울로 운송된다. 물론 관리를 직접 해야 하고 까다로운 문제가 많긴 하겠지만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할까) 집 앞까지 철길을 깔아도 재미있겠다. 강원도의 김유정역처럼 사람의 이름이 붙은 역이 생겨나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기차를 타고 간다면 꽤 멋질 것 같다. 다음 역은 소설가 김중혁역입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실 분은 놓고 내리는 물건이 없도록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고, 김중혁씨의 소설을 꼭 지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중혁역에서는 김중혁씨의 소설을 지참하지 않으면 통과하실 수 없습니다. 기차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종이를 낭비하면서
생각을 발전시킬 것인가
생각을 낭비하면서
종이를 절약할 것인가
딜레마다

공장의 설명을 해주실 분은 ㅇ과장님. ㅇ과장님은 이 공장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공장이 생긴 지 1년 만에 이곳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올해로 22년째 같은 공장에 다니고 있다. 22년째 같은 공장에 다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만나서 어색한 나머지 곧바로 종이 이야기를 했다. “저는 종이를 정말 많이 쓴답니다.” “아, 그러시군요. 종이 소비는 자꾸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 저는 참 많이 쓰는데….” “많은 게 디지털로 바뀌고 있으니까요. 잡지 시장이나 인쇄물 시장 쪽도 좋지 않고요….” “제 책도 잘 안 팔리고 있어요.” 등과 같은, 각자의 헤드폰 쓰고 다른 음악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뜬금없는 대화를 잠시 주고받다가 과장님은 곧장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마침 그날이 동지였고, 구내식당에서는 일반 식사와 함께 팥죽이 곁들여졌다. 팥죽은 무척 맛있었다. 식판을 들고 밥을 먹는 것은 군대 제대 이후 거의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밥이 맛있다면 재입대를 심각하게 고려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물론 매 끼니를 같은 식당에서 해결해야 하는 공장 사람들은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말이다. 자, 이제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나, 제지공장 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이 글을 끝내고 싶었으나 결국 이번 회는 여기까지. 다음 회에서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공장 안의 야릇한 냄새 이야기가 등장하니, 2주 후에 꼭 다시 만나요.

취재에 도움을 주신 한솔제지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중혁 소설가

profile

김중혁
1971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2000년 소설집 <펭귄뉴스>로 데뷔했으며 데뷔 전 잡지 기자 등으로 일했다.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2008), <1F/B1>(2012), 장편소설 <좀비들>(2010), <미스터 모노레일>(2011), 산문집 <대책없이 해피엔딩>(김연수 공저, 2010), <뭐라도 되겠지>(2011) 등을 발표했다. 2010년 젊은 작가상 대상, 2011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2년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어린 시절 산만한 아이로 자랐으며 지금도 산만하고, 좋아하는 것만 먹는 편식주의자다. 대학 시절의 별명은 F4(F학점을 한 해에 네 번까지 기록했던 놀라운 성적)였으며 (근로)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에스프레소를 연료로 움직이는 생명체이며, 귀신을 믿지 않아서 밤에 잘 싸돌아다니는데, 그 때문인지 낮 동안은 햇볕 알레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소리와 냄새에 매우 예민하지만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성격은 매우 좋은 편이다. 2008년 esc 기자로 7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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