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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30 18:24 수정 : 2013.01.31 14:08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매거진 esc] 에세이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②브래지어 공장
사장님, 절 어떻게 보시고;;;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공장 연재를 시작하니 세상의 모든 일들이 공장과 연결돼 있는 것 같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나를 위한 공장 이야기가 나오고 (내가 그런 프로그램들만 봐서 그런 거겠지) 거리를 지나다 문득 창 안을 들여다보면 (하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 우린 참 열심히 만들고 있구나. 특이하거나 재미난 제품을 보게 되면 이건 또 어디서 만들었을까 제조지 표시를 보게 되는데, 역시 중국은 크고도 넓은지 어지간한 제품은 다 중국에서 만들더라. 중국에서도 참, 열심히 만들고 있구나.

세상에는 수많은 공장이 있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보고 싶은 공장은 많고, 지면은 한정돼 있으니 편집자와 상의를 하게 되는데, 편집자가 ‘브래지어 공장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마음속에서 ‘흐음’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흐음’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우선, 브래지어 공장을 다녀와서 내가 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고, (흐으음) 브래지어 공장에 가서 표정 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흐, 흐음)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기도 했다. (흐음)

브래지어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훅(걸고리) 풀 줄만 알았지 (흐음) 80B가 어떤 의미인지, 왜 컵 사이즈는 A부터 시작하는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어쨌거나 신기하긴 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브래지어 공장을 찾았다.

‘브래지어’를 ‘브라자’라고
발음하는 순간,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30년 동안 여자 속옷 생산에만 몰두하고 계신 남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알고 보니 그날 공장에 남자는 우리 둘뿐이었다. 전 직원이 (사장님 포함) 42명이었는데, 여자 직원이 40명이었고 남자 직원 한명은 외근중이었다. 나는 브래지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담담하게 물어보려는 것인데 사장님이 브래지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하는 통에, 나는 왜 그런지, 낯이 빨개지고, 빨개진 내 얼굴을 보신 사장님은, 하하, 얼굴이 빨개졌네요, 이걸 만지기가 서먹서먹하잖아요, 저는 오랫동안 만져서 이게 브래지어처럼 보이지 않고 그냥 제품으로 보이니까, 만지작거리면서 일을 하지요, 저도 처음엔 손으로 못 만지고 드라이버로 들어서 봤어요, 라는 말을 들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고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브래지어의 컵을 또 그렇게 대놓고 만지시니, 참 이상하게도 몸둘 바를 모르겠는 건 왜일까.

사장님이 이러저런 얘기를 들려주시다 ‘브래지어’를 ‘브라자’라고 발음하는 순간, 그 한마디에, 나는 순식간에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막 성에 눈뜨던 시절, 이성이란 게 뭔지 궁금하고,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던 시절이었다. 뭐든 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학교 수업 시간, 책상 아래에 ‘여성지’를 펼쳐놓고 읽다 속옷 광고에 흠칫 놀라곤 했다. 그때는 정말 브래지어 광고만 봐도 막 떨리고 그랬다. 여자 모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브래지어와 팬티만 기억났다. 브래지어의 컵 사이에 깊게 파인 골만 봐도 온몸이 파르르 떨려서, 그걸 선생님이 지켜봤다면 저 녀석 어디 아픈 게 아닐까 걱정했을 정도로 예민하던 때였다.

물론 집에도 여자 속옷은 있었다. 빨랫줄에는 늘 어머니의 속옷이 널려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에게서 ‘브라자’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브라자’라고 부르면, 나는 그 발음이 부끄러웠다. 브라자, 라고 하는 순간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모든 걸 까발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브래지어’라는 단어를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가끔 ‘브라자’라고 발음해보곤 했다. 그러면 어쩐지 나도 모르게 낯이 뜨거워졌다.

1970년대에는 ‘브라자’가 표준어이기도 했다. 광고에서도 ‘브라자’라는 단어를 썼다. 지금은 대부분 브래지어로 발음하지만 공장에서는 오히려 ‘브라자’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발음하기가 편하니까. ‘자, 직원 여러분, 다음으로 만들 ‘브래지어’를 알려드릴게요’보다는 ‘자, 다음 브라자!’라고 하는 순간 작업 공정이 한 2초 앞당겨졌군요.

75A부터 85D까지 중
어떤 사이즈를 가장 많이
만들겠느냐고 물어보셨다
제가 그런 걸 왜 궁금해하겠어요

브래지어는 남자들을 (낯)뜨겁게 하는 물건이면서 여자들의 역사에서도 꽤 중요한 제품이다. 여자들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 게 코르셋이었다면 브래지어는 여자들도 간편한 차림으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여자들은 코르셋 대신 브래지어를 입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브라자’ 역시 여자의 속옷이었다기보다 ‘일하는 여자’의 작업복이었을 것이다.

브래지어 공장의 ㄱ사장님은 1984년부터 브래지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생산과장이던 시절, 전설의 ‘틴틴브라’도 직접 생산했고, 1998년 퇴사하여 자신의 공장을 세운 뒤 지금까지 1500여 모델의 브래지어를 만들었다. 형상기억합금 와이어 같은 신기술이 도입되기도 했고, 재료가 고급스럽게 바뀌기도 했지만 브래지어를 만드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ㄱ사장님은 생산과장이었을 때 작성한 작업지시서를 지금도 가지고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외래어를 보는 것 같다.

속컵은 다트 본봉(끝이 뾰족하지 않게 2.4㎝ (공통) 자연스럽게 굴리고 시접. 옆선 쪽으로 꺾음) 겉컵은 표시점간 주름 잡기(3㎝ 공통). 겉, 속컵 씌워 부직포 끝에서 9㎜ 안쪽에서 지봉 후 시접으로 부직포 끝 감싸 2㎜ 안쪽에서 한줄 더 지봉하고 앞중심과 날개 위로 겹쳐 본봉.

이런 지시문이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 있다. 여러 개의 조각 천으로 브래지어를 만들듯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를 맡아 제품을 완성한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분화되어 있다는 건(하나의 브래지어에 들어가는 자재는 20가지 이상이다) 그만큼 브래지어를 만드는 게 어려운 작업이라는 뜻일 것이다.

공장에 들어서면 마치 독서실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 재봉틀 움직이는 소리, 라디오 소리가 바닥을 흐르고 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이 다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의 작업 속도가 다음 사람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장소의 묵직한 침묵이다.

ㄱ사장님은 마치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는 듯, 모델의 사이즈별 수량표를 보여주셨다. 75A부터 85D까지 중 어떤 사이즈를 가장 많이 만들겠느냐고 물어보셨다. 말하자면 표준 체형 같은 것인데, 아니, 사장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 제가 그런 걸 왜 궁금해하겠어요라고 발끈하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니 궁금하기도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 수량은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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