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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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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⑤ 간장 공장 (하)
할머니의 좁은 방에
걸려 있던 메주의
시큼한 냄새
그건 시간의 향이었다
지난주에 하다 만 공장의 임시 직원 이야기는 좀 있다 하기로 하고, 콩 냄새와 할머니에 대해 좀더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어렸을 때는 된장찌개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먹었나 싶지만 그때는 냄새를 맡기도 싫었다. 큼큼하고 꼬리꼬리한 냄새를 맡고 나면 혹시 이 냄새가 나에게서 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몸에다 코를 대보았고, 그러고 나면 식욕도 없어져서 밥맛이 뚝 떨어지곤 했다. 나에게 된장 냄새는 가난의 냄새였고, 늙은 냄새였고, 패배의 냄새였다. 그게 모두 할머니의 방 때문인 것 같다.
안동에 있는 큰집의 할머니 방을 생각하면 늘 메주가 떠올랐다. 좁은 방에 걸린 커다란 메주 덩어리가 먼저 생각나고, 질 수 없다는 듯 시큼한 냄새가 뒤이어 떠올랐다. 큰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절을 할 때면 어서 빨리 그 방을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가난한 시골집의 할머니 방은 비좁았고, 누추했고, 보잘것없었다. 얼마나 불을 땠는지 아랫목은 누렇게 탔고, 이불은 색이 바랬고, 벽에 걸어놓은 가족사진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냄새는 메주의 냄새였다. 할머니는 그 방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계셨다. 집에 돌아와서 된장을 먹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할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몸에서 된장 냄새 나지 않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늙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받는 손자는 아니었다. 나도 할머니를 썩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가끔 할머니의 삶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메주가 생각난다. 그 좁은 방에서 천천히 늙어가는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메주와 함께 천천히 발효되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다.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거대한 간장 공장에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거대한 숙성 탱크가 있는 곳이다. 110t과 300t짜리 숙성 탱크가 높은 건물처럼 솟아 있고, 그 위에 올라가면 먼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버티고 있다. 발아래 탱크 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 입구를 열어보면 뭔가 툭, 툭, 터지고 보글보글 솟아오르고, 끓어오른다. 석달 정도 시간이 지난 탱크는 조용하지만, 한달 된 탱크는 시끌벅적하니 활화산이 따로 없다. 1g당 백만마리 이상의 효모들이 뒤섞이고 끓어오르면서 6개월 동안 간장을 만들어낸다. 공장장님은 신입직원들이 들어올 때마다 숙성 탱크 위로 직원들을 데리고 간다고 한다.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 그 위에 서보게 한다. 아찔한 높이 때문에 벌벌 떠는 직원들이 많지만 꼭 거기 데려가는 이유는, 아마도 시간을 가르쳐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간장을 만드는 가장 큰 원리가 시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똑같은 식품 제조업처럼 보여도 우린 이렇게 숙성 탱크에 넣어놓고 몇개월을 관리하고 기다려야 제품이 나와요. 훨씬 신경 쓸 일이 많고 까다롭죠.”
공장장님의 말에 내가 농담을 건넸다.
“에이, 공장장님, 직원이 100여명이라고 하시더니, 훨씬 많네요. 세상에서 직원이 가장 많은 공장의 공장장님이시네요.”
“그렇죠. 이 천문학적인 숫자의 효모들이 다 제 직원들입니다.”
신입직원들을 숙성 탱크로 데리고 가는 것은, 그러니까 탱크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효모 선배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셈이다. ‘효모 선배님, 이제 저도 간장의 세계에 뛰어들어 보려 합니다. 많은 지도 편달 바랍니다.’ ‘그래, 시간을 견디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나는 몇개월 뒤 살균실에서 사라지고 말지만 나의 마음은 간장에 담겨 있을 것이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간장을 만드는 공정은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금방 나오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두가지 공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하나는 찐 콩과 볶은 소맥을 골고루 섞은 다음 곰팡이를 띄우는 제국 과정, 즉 메주를 띄우는 일인데 가정에서 하는 것과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씨름판에서 모래를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것처럼 메주를 차곡차곡 정리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정성스럽던지 둥그런 기계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뛰어들어가서 메주에다 내 발자국을 찍고 싶었다. 몇월 며칠, 김중혁 다녀감.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소는 숙성 탱크 높이의 프레스 기계가 세 대 설치된 압착실이었다. 일단 규모에 압도당하고 철컥, 철컥, 하는 소리에 주눅 든다. 우선 천을 한 장 한 장 깔고 그 위에다 발효된 제미(탱크 안에서 소금과 함께 숙성된 메주)를 쏟는다. 450장 정도의 천과 제미를 샌드위치처럼 쌓은 다음에 기계로 눌러 간장 원액을 뽑아내는 것인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모든 액이 빠져나간 제미, 즉 장유박은 푸석푸석하게 말라 있는데, 수분이 빠져나간 것들은 어째서 그렇게 모두들 안쓰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말라 비틀어져서 손대면 바스라진다. 생명이란 그렇게 빠져나간다. 재래식 제조법으로 만든 메주에서 간장으로 빠져나오는 영양소가 20퍼센트 정도라면 프레스 기계로 누른 제미는 거의 대부분의 영양소가 간장으로 빠져나온다. 그래서 간장을 만들고 남은 제미로 된장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효모 선배들의 마지막 육신, 말라빠진 장유박은 버려지지 않고 소나 가축의 사료에 섞이기도 한다.
공장 거대한 탱크 안
간장을 익히는 것은
수억마리 효모와 시간
음식도 결국 시간을 먹는 것
어렸을 때는 콩, 두부, 된장, 간장을 싫어했지만 지금은 무척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두부를 가장 좋아하고, 콩국수도 아휴, 좋아하고, 청국장도 좋아하고 된장찌개도 좋아하고, 간장떡볶이도 좋아하고, 간장게장도 좋아하고…, 아, 그만하자, 침 넘어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부모님의 성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편식 어린이들이 방패막이로 써도 좋을 어른이다. “이 아저씨 봐요. 나중에 된장찌개 많이 먹는다잖아요. 지금 먹으란 소리 마세요. 저도 어른 되어서 먹을 거예요.” 그래, 얘들아, 어른이 되어서 된장찌개를 먹는 일도 나쁘지 않단다. 어른이 되어서 된장찌개를 먹으면 할머니 생각이 무척 나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 빼곤 대부분 좋단다. 그때 좀 덜 부끄러워할걸, 그 방을 조금 더 좋아해드릴걸, 조금만 더 같이 있어드릴걸, 그런 후회가 든단다.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딱 한가지만 얘기해줄게. 어른이 되어서 된장찌개를 먹고 있으니 된장찌개가 아니라 시간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어쩌면 모든 식사란 시간을 먹는 일인지도 모르지.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시간, 그 음식의 재료가 익어온 시간, 그런 시간을 먹는 일인지도 모르지. 한 끼 한 끼란 무척 소중한 시간이란다. 간장 공장에서 돌아온 나는 검고 투명한 간장을 보며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취재에 도움을 주신 샘표식품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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