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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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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⑫ 화장품 공장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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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제품은
U라인 위에서 제작된다
U라인이 축소된 셀라인에서는
한사람이 모든 공정을 처리한다 화장품 공장은 ‘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고 사람의 몸에 직접 닿는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청결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작업장이 깨끗하지만 그중에서도 청정도 1등급인 곳이 있다. 마스카라를 생산하는 곳이다. 눈에 직접 닿을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관리 기준도 엄격하고, 일하는 사람도 거의 우주여행복 같은 옷을 입고 작업을 한다. 작업장이 오염되면 순식간에 큰 사고로 직결되기 때문에 두겹 세겹으로 방어막을 둘러싸는 것이다. 작업자의 옷을 보고 있으니 인간의 욕망이란 참으로 강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가에 뭔가를 바른다는 건 그토록 위험한 일이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는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이다. 작업자의 두꺼운 옷은 우리들의 욕망의 두께이기도 하다. 화장품 공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들의 욕망이 점점 구체적이고 세분화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초 화장품이든 메이크업 화장품이든 공정은 비슷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화장품을 연구하고 미리 만들어서 테스트해본 다음 잘되겠다 싶으면 양산한다. (흠, 너무 간단하게 설명했군) 연구원들이 화장품을 미리 만들어보는 곳을 ‘파일럿실’이라고 하는데, 기초 화장품은 대략 50㎏ 정도의 제품을 만든 다음 안정성 검사나 미생물 검사 등을 실시한다. 메이크업 화장품은 ‘파일럿실’이 두곳으로 나누어진다.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와 유행을 조사하는 ‘연구실’이 있고, 연구를 바탕으로 10㎏ 정도의 ‘파일럿 제품’을 만드는 곳이 분리돼 있다. 기초 화장품이 ‘기초’를 채워준다면, 메이크업 화장품은 ‘취향’과 ‘유행’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셈이다. 작업장을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기초 화장품 작업장에는 고정적인 수요가 있는 제품을 3000개 이상 생산하는 라인이 따로 있다.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공장 특유의 기운이 있다. 메이크업 작업장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작은 라인이 여러 개 있고,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이런 라인의 시초는 ‘유(U)라인’(유재석 라인이 아닙니다)이다. 컨베이어 시스템은 대량생산을 하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엔 부적합할 수밖에 없다. 일자로 만들어진 시스템에서는 ‘속도’를 낼 수 없고, 인력의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U자 형태로 된 라인에서는 최소한의 인력이 생산을 담당할 수 있다. (U라인은 1940년대에 도요타에서 처음 선보인 생산 라인이라고 한다.) 이후에 만들어진 게 바로 ‘셀(Cell) 라인’이다. 셀 라인은 소련의 군수공장에서 처음 선보인 것인데, U라인을 축소해서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공장에서는 다양한 셀 라인을 만들었다. 듀얼 셀 라인, 멀티 셀 라인 등등 수많은 조합이 가능하다. 생산담당 책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생산 라인의 정의를 ‘아메바’라고 내려요. 환경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하며 적응하는 단세포 동물 말이에요. 현재 있는 생산 라인은 내일이면 없어질지도 몰라요. 영구적이 아니라는 거죠. 내일 고객이 다른 요구를 하면 우리는 또다른 라인을 만들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산 라인은 절대 고정적이어서는 안 돼요. 하루에도 열두번은 더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죠.” 화장품 공장의 모든 구조는 우리의 욕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U자 형태의 작업장도, 셀 라인의 형태도, 마스카라 생산장의 모습도, 우리의 욕망을 비춰주는 거울인 셈이다. 말하자면 화장품은 레고 블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수많은 화장품의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남들과 ‘다른’ 조합을 꿈꾸고 ‘다른’ 모습을 원하고 있다. 화장품을 잘 모를 때에는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지만) 저토록 다양한 화장품을 생산하는 것은, 당연히 상술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생활을 그토록 세분하는 것은 (아침에는 이걸 바르고, 저녁에는 저걸 바르고, 자기 전에는, 또 햇볕 있을 때는 이것, 또 저것, 아니 또 뭐?)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게 됐다. 레고 블록의 종류가 많을수록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형상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욕망을 세분할수록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작업장과는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의 작업장에는 구체적인 사람의 형상이 눈에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제품을 쓰는 소비자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립스틱은 재료에 열을 가해서 녹인 다음 급속 냉각 성형시키며 제품을 만드는데, 찌그러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품을 하나하나 검사해야 한다. 립스틱 하나에 한 사람의 입술이 보이는 것 같다. 화장품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재료와 성분, 효능과 효과인 것 같다. 어떤 화장품이 제일 좋은지 콕 집어서 추천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부터 화장품 성분의 과학과 비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흠, 지면도 부족하고) 몇 주 정도 식음을 전폐하고 공부를 해야 하므로 그런 어려운 일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몇 가지는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본 기초 화장품 공장의 풍경은 이랬다. 어떤 화장품은 정말 고급한 재료로 만들고 있었다. 재료를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허브를 키우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연구원들은 좋은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연구하고 있었다. 어떤 연구원은 주차장 도장의 원리를 응용해서 사용이 간편한 새로운 용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모든 공간에는 자부심이 있었고, 당당함이 있었다. 공장이란 곳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호의와 선의’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다. 또한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기도 하다. ‘절박한 필요’가 ‘호의와 선의’를 이길 때 음식물에다 이상한 물질을 때려 넣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 ‘호의와 선의’가 ‘절박한 필요’를 이길 때, 안타깝지만 공장은 망한다. 나는 화장품 광고란 ‘호의와 선의’로 화장한 ‘절박한 필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맨얼굴은 ‘절박한 필요’지만 ‘호의와 선의’로 예쁘게 화장을 한 것이다. 화장을 해야 우리 눈에 띌 수 있다. 화장을 하고 나면 아름다워지고, 윤곽이 뚜렷해진다. 화장품 회사가 광고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 아니냐고, 그 모든 것이 화장품 가격을 올리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화장품 회사로서는 화장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소개팅을 하러 나가는데 맨얼굴로 나갈 수 없다. 불평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제품을 살 때 이미지도 함께 산다. 어떤 화장품 브랜드를 떠올리면 어떤 모델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우리는 모델의 이미지와 그들의 웃음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구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화장품 회사의 선의를 믿는 조건으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복잡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고, 우리들이 살아 있는 방식이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아모레퍼시픽에 감사드립니다. <아모레퍼시픽 스토리북; 어머니의 부엌에서 세계의 부엌으로>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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