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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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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휴가 특집 ‘번외편’ 소설가 김중혁의 글 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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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분류실에서 정리되면
숙성창고를 거쳐
소설공장, 수필공장으로 이동된다 작업장의 크기는 작지만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바로 ‘수필 공장’이다. ‘메이드 인 공장’을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연간 수십개의 글을 생산할 정도로 생산량과 수익성이 높은 곳이며 ‘김중혁 글공장’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수필 공장은 대체로 ‘주문 생산’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생산 라인이 가동된다. 주문을 받은 수필 공장 자료수집원들은 ‘글감 분류실’과 ‘숙성창고’를 뒤져서 적당한 소재를 찾아낸 다음, 생산 라인으로 보낸다. 생산 라인에서는 자료수집원들이 보내온 자료를 검토하고 보충 취재를 추가하여 마감에 늦지 않도록 물건을 생산하게 된다. ‘수필 공장’에서는 마감일, 즉 물건 납기일이 무척 중요하다. 소설의 경우는 제작이 늦어져도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수필의 경우는 거래처와의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되 생산 마감 시간을 어기지 않으며 품질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수필 공장의 핵심이다. 지난해에는 수필 공장 직원들의 파업도 있었다. 수필 공장에 지나친 업무를 맡기는 바람에 직원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회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자신들을 소홀히 한다는 게 직원들의 항의 내용이었는데, 대체로 옳은 이야기였다. 각종 연재물을 제작하고 있음에도 각종 단발성 글 상품 주문을 받는 바람에 야근이 잦았고, 제대로 된 휴가를 가지도 못했다. 그들이 보기에 소설 공장은 매일 한가해 보였다. 매일 놀고먹는 것 같은데 전체 공장의 핵심부서라는 걸 용인할 수 없었다. 김중혁 공장장은 올해부터 수필 공장의 일을 줄여보기로 했다. 가장 큰 업무인 ‘메이드 인 공장’ 생산 말고는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소설 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고, 수필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김중혁 글공장의 주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림 공장은 김중혁 글공장의 양념 같은 작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공장에서는 각종 표지 제작, 카툰, 아이디어 낙서, 회사 누리집에 올릴 그림 제작 같은 업무를 맡고 있는데, 다소 삭막할 수 있는 회사의 이미지를 밝게 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김중혁 글공장의 기계는 언뜻 보기만 해도 최신식임을 알 수 있다. (공장장이 신제품에 관심이 많다.) 아직도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수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김중혁 글공장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당히 혼합하여 최고의 능률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우선 공장 구석구석에 (그렇게 비싸다는 노트) 몰스킨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으며,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노트들이 적재창고에 가득하다. 김중혁 글공장의 1차 메모를 담당하는 샤프펜 역시 0.3부터 0.9까지 종류별로 구비돼 있다. 만년필도 두 종류가 구비돼 있고, 유성펜은 회사 주변에 울타리를 심어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을 준비해놓고 있다. 최근에는 (공장의 주요 물건 공급처인 펀샵에서 구매한)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아날로그 장비들은 다양한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반면, 디지털 제품은 주로 ‘애플’사의 것으로 이뤄져 있다. 글감 분류실과 숙성창고에서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이용하며, 소설 공장과 수필 공장에서는 ‘맥북 에어’나 ‘맥북 프로’를 주로 사용하고, 그림 공장에서는 ‘아이맥’을 사용한다. 부가 장비와 소프트웨어 역시 눈여겨봐둘 만한데, 그림 공장에서 사용하는 와콤사의 전문가용 태블릿, 글감 분류실에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에버노트’, 숙성창고에서 주로 이용하는 아이패드용 ‘피디에프(pdf) 노트’, ‘라이트룸’(WriteRoom) 같은 제품들 역시 김중혁 글공장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들이다. 김중혁 글공장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아무래도 ‘스크리브너’(Scrivener)가 아닐까 싶다. 소설 공장과 수필 공장에서 모두 이 장비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데, 다른 워드프로그램을 사용할 때보다 생산량과 작업 효율이 무척 높아진 것 같다. 스크리브너의 장점은 체계적인 제품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김중혁 글공장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공장 본사의 한가운데에는 이 모든 작업장을 관리하는 통제실이 있다. 통제실 앞에는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표어 하나가 적혀 있다. ‘멍하니, 바라보자, 오랫동안, 바라보고, 끈기 있게, 바라보고, 오랫동안 생각하자, 모든 게 끝났으면 빠른 시간에 쓰자.’ 표어에 적힌 글이야말로 김중혁 글공장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휴가가 끝나면 공장은 다시 쉼없이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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