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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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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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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로 돈 벌기힘들지만
의외의 단골들이 많다
영화 소품 제작을 맡기거나
건축, 철공예 예술가들도
대장간의 단골이다 가장 만들기 까다로운 것은 도끼 종류다. 만드는 기술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하나에 4~5킬로그램이 넘는 도끼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몸이 힘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은 의외로 칼이다. 열심히 두드려도 하루에 열 개 만들기 힘들다. 칼 모양 잡고, 칼자루 깎고, 칼자루 박고, 끝마무리하고, 열처리하고, 다시 갈아야 한다. 칼 한 자루에 1만원부터 10만원짜리까지 종류도 다양하지만 만드는 노력을 생각하면 전혀 비싼 게 아니다. 칼은 주문이 들어와야 만든다. 미리 만들어놓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농기구로는 돈을 벌기 힘들지만 의외의 단골들이 많다. 사극에 나오는 농기구나 궁녀들이 쓰는 칼, 약초 캘 때 쓰는 호미 등의 영화 소품 제작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도 많다. 건축 관계자들, 철공예 아티스트들, 공예를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대장간의 단골이다.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만큼 잘 벌지만,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이거 배우려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되는데, 아니지, 10년도 모자라지. 여기 집게만 봐도 얇은 거, 동그란 거, 넓적한 거, 다 달라요. 집게만 해도 70가지는 될 거예요. 일단 쇠를 만지려면 눈썰미가 있어야 되고, 손재주도 있어야 해요. 여기에 있는 쇠도 다 다른 거예요. 킬로그램에 몇백원 하는 쇠도 있고, 킬로그램에 십만원 하는 쇠도 있고, 천차만별입니다. 그걸 다 익히려면 10년도 모자라지.” 똑같은 호미 같고, 똑같은 칼 같지만, 대장간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한눈에 알아본다. 자신만의 고유한 모양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대장간을 공장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의미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대장간을 두고 단순히 공장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많은 부분을 기계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손으로 때리고 두드려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공장을 취재하고 다니면서 공장과 공장 아닌 곳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공장이 과연 무얼까. 대장간의 주인장은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대장간을 드나들던 아이가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 대장간에 일 배우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갔으니,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대장간의 주인장이 아이 이야기를 할 때 싱긋거리는 것을 봤다. “애가 만드는 걸 무지하게 좋아한대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쇠를 두드려서 뭘 만들었대요. 자주 찾아와서 일하는 걸 지켜보고 하길래, 엄마가 반대 안 하시냐 물었더니 이미 설득을 했대요. 한번 믿고 기다려봐야지. 우리는 일자무식이지만 그 아이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면 뭘 해도 나보다 잘하겠지.”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아이의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다, 변해도 할 수 없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장간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나는 계속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날따라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퍼붓는 눈을 보면서 쇠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착, 착, 찰그랑, 찰그랑, 툭, 툭, 툭, 투쿵, 투쿵, 투쿵, 채쟁, 채쟁, 챙, 챙, 하는 쇳소리가 어찌나 리드미컬한지 귀를 뗄 수가 없었다. 소리는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눈 속에 파묻혔다. 대장간의 위치는 역 바로 앞이었다. 시끄러운 대장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점과 떨어져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고르고 고른 곳이 지금의 위치였다.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역 앞의 대장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간에서 들리는 소리와 기차 소리는 어쩐지 닮았다.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소리, 아련한 소리, 아득한 소리, 세상 어떤 소리보다 리드미컬한 소리였다. 내 귀에만 그렇게 들리는 것일까. 대장간 집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만 그렇게 들리는 것일까.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취재 협조해주신 형제대장간에 감사드립니다.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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