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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8 19:51 수정 : 2013.12.19 13:14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매거진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대장간

내 탄생의 비밀에 대해서는 대학생 때 처음 들었다. 어머니는 겸연쩍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묻어둔 비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얘야, 사실은 말이지.” 나는 잔뜩 긴장했다. “얘야, 너는 말이지.” 어머니, 빨리 이야기하세요. “사실은 말이야…, 너는 야외에서 태어났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머니를 한참 보았다. 야외에서 태어났다는 건, 은유나 상징 같은 것일까,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얼굴에서 문학적 허세는 느낄 수 없었다. 말 그대로였다. 나는 야외에서 태어났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찢어지게 가난하여 찢어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들고 있던 시절, 둘째 아이가 들어섰다. 그게 나다. 내가 세상에 나올 때쯤 부모님은 작은 방에 세들어 살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주인집에도 태어날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비극이 시작되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한 지붕 아래에서 한 달 내에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운이 사납고 불길하다’는 이상한 미신을 믿고 있었는데,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겠지만 그 시절엔 그런 소리가 꽤 힘있게 전파되던 시기였고, 어머니는 힘없는 세입자다 보니 매일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인집 아이가 먼저 태어났고, 어머니는 진통이 오자마자 밖으로 나가 헛간에서 나를 낳으셨다. 나는 별을 보며 태어났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탄생설화 같다. 별을 보며 태어난 이 아이는 성장하여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다.) 어머니는 풍로에다 왕겨를 넣어 불을 지핀 다음 물을 끓이시었다. 그러시었다. 주인집에서 나무 땔감을 태울 때 어머니는 그러시었다. 생각만 해도 욕이 튀어나오지만, 주인집 아주머니도 사정이 있었겠지. 나를 소설가로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그러신 것이겠지, 암, 그렇고 말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일이 음력 3월인데, 밤에 날 낳으셨다던데, 참 추웠을 텐데, 그것 참 너무하셨네, 싶다. 어머니는 탄생의 비밀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네가 태어난 곳은, 주인집의 대장간 바로 옆이었단다.” 이런, 전설의 완성이다. 마구간도 아니고 대장간이다.

아이는 자라서 소설가가 된 뒤, ‘메이드 인 공장’을 스스로 기획하고, 대장간 역시 일종의 공장이 아니겠냐며 기어코 대장간을 찾아가고야 만다. 어쩐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주인에게 곧바로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제가 태어난 곳이 대장간입니다.” 주인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유, 좋은 데서 태어났네. 대장간이라는 데가 쇠하고 불이 있어서 기운이 좋은 곳이에요. 불 갖고 노는 집이니까. 활활 타오르고 잘될 거예요. 큰사람 되겠네. 껄껄껄.” “예, 그래서 제가 이렇게 몸이 큰가 봅니다. 하하하.” 주인장은 짧은 대꾸만 하고 계속 쇠를 두드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를 때리고 두드리고 식히고 구부리고 다시 때리고 펴고 다듬어서 던져두면 마술처럼 도구로 변했다.

일종의 공장이 아니겠냐고 했지만, 실제로 공장이 맞았다. 다녀본 공장 중에 이보다 더 공장스러운 곳을 보지 못했다. 문 입구에는 호미, 낫, 괭이, 갈고리 등 수백 가지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안쪽에는 뜨거운 화로가 공장을 달구고 있으며, 작업대에서는 큼지막한 망치로 쇳덩이를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이날은 오리 훈제용 집게를 만들고 있었다. 한 사람이 큰 망치로 두들기면 한 사람이 쇳덩이를 모루에 놓고 메질을 하며 모양을 다듬는다. 망치로 이리저리 두드리니 금세 모양이 잡힌다.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호미나 집게 종류다. 하루에 40~50개는 거뜬히 만들 수 있다.

옛날처럼
농기구로 돈 벌기힘들지만
의외의 단골들이 많다
영화 소품 제작을 맡기거나
건축, 철공예 예술가들도
대장간의 단골이다

가장 만들기 까다로운 것은 도끼 종류다. 만드는 기술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하나에 4~5킬로그램이 넘는 도끼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몸이 힘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은 의외로 칼이다. 열심히 두드려도 하루에 열 개 만들기 힘들다. 칼 모양 잡고, 칼자루 깎고, 칼자루 박고, 끝마무리하고, 열처리하고, 다시 갈아야 한다. 칼 한 자루에 1만원부터 10만원짜리까지 종류도 다양하지만 만드는 노력을 생각하면 전혀 비싼 게 아니다. 칼은 주문이 들어와야 만든다. 미리 만들어놓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농기구로는 돈을 벌기 힘들지만 의외의 단골들이 많다. 사극에 나오는 농기구나 궁녀들이 쓰는 칼, 약초 캘 때 쓰는 호미 등의 영화 소품 제작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도 많다. 건축 관계자들, 철공예 아티스트들, 공예를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대장간의 단골이다.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만큼 잘 벌지만,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이거 배우려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되는데, 아니지, 10년도 모자라지. 여기 집게만 봐도 얇은 거, 동그란 거, 넓적한 거, 다 달라요. 집게만 해도 70가지는 될 거예요. 일단 쇠를 만지려면 눈썰미가 있어야 되고, 손재주도 있어야 해요. 여기에 있는 쇠도 다 다른 거예요. 킬로그램에 몇백원 하는 쇠도 있고, 킬로그램에 십만원 하는 쇠도 있고, 천차만별입니다. 그걸 다 익히려면 10년도 모자라지.”

똑같은 호미 같고, 똑같은 칼 같지만, 대장간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한눈에 알아본다. 자신만의 고유한 모양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대장간을 공장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의미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대장간을 두고 단순히 공장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많은 부분을 기계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손으로 때리고 두드려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공장을 취재하고 다니면서 공장과 공장 아닌 곳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공장이 과연 무얼까.

대장간의 주인장은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대장간을 드나들던 아이가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 대장간에 일 배우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갔으니,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대장간의 주인장이 아이 이야기를 할 때 싱긋거리는 것을 봤다.

“애가 만드는 걸 무지하게 좋아한대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쇠를 두드려서 뭘 만들었대요. 자주 찾아와서 일하는 걸 지켜보고 하길래, 엄마가 반대 안 하시냐 물었더니 이미 설득을 했대요. 한번 믿고 기다려봐야지. 우리는 일자무식이지만 그 아이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면 뭘 해도 나보다 잘하겠지.”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아이의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다, 변해도 할 수 없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장간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나는 계속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날따라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퍼붓는 눈을 보면서 쇠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착, 착, 찰그랑, 찰그랑, 툭, 툭, 툭, 투쿵, 투쿵, 투쿵, 채쟁, 채쟁, 챙, 챙, 하는 쇳소리가 어찌나 리드미컬한지 귀를 뗄 수가 없었다. 소리는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눈 속에 파묻혔다.

대장간의 위치는 역 바로 앞이었다. 시끄러운 대장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점과 떨어져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고르고 고른 곳이 지금의 위치였다.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역 앞의 대장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간에서 들리는 소리와 기차 소리는 어쩐지 닮았다.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소리, 아련한 소리, 아득한 소리, 세상 어떤 소리보다 리드미컬한 소리였다. 내 귀에만 그렇게 들리는 것일까. 대장간 집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만 그렇게 들리는 것일까.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취재 협조해주신 형제대장간에 감사드립니다.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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