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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9 14:18 수정 : 2013.03.29 21:08

최소 4조원에 이르는 다단계 사기를 벌인 조희팔은 수시기관의 묵인과 비호 아래 중국까지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재산을 탕진한 피해자들의 모임과 언론의 문제제기가 없었더라면 총체적 국가비리의 일부조차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7>사기꾼 조희팔과 그 일당

‘안마기 임대사업’ 대박 입소문
3만명한테 3조~4조원 빼앗아
피해자 중 최소 10명이 자살
경찰에 뇌물 5억원 뿌리고
2008년 12월 중국으로 튀어

검경은 묵인하고 비호했다
검거 책임지고 중국까지 갔던
대구경찰청 형사는 오히려
술접대만 받고 돌아와 구속됐고
김광준 검사는 2억4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대통령 선거,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북한의 핵 장난과 전쟁 위협, 일본의 우경화와 독도 도발 등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세상이 시끄러워질 때마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이가 있다. 총 3만명에 이르는 피해자들로부터 4조원에 달하는(피해자모임 추정 피해자 10만명, 피해액 8조원) 거액을 편취한 뒤 중국으로 밀항해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조희팔’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나마 세상이 조금 안정적일 때 그의 이름은 인터넷 검색어에도 오르고, 네티즌 수사대가 중국 내 거주 위치를 추적하고 방송 탐사 프로그램이 취재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수사당국도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수사대를 현지에 파견하고 중국 공안에 협조를 의뢰하는 등 뒤쫓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적어도 수사기관과 정부 관계 당국자들에겐 그렇다. 어쩌면 이 나라 정계와 관계, 사법계에서 힘깨나 쓰고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치고 조희팔이 검거돼 그의 입을 통해 열려질 ‘판도라의 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많지 않은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몸이 날렵하지도 않고 현지 언어에 능통하지도 않으며 한국과의 연결·연락없이 장기간 버텨내기 어려운 그가 이토록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은 채 꼭꼭 숨어있을 수 있을까? 전 재산을 조희팔에게 다 털린 피해자들의 모임만 빚내서 끌어모은 돈을 밑빠진 독에 물 붓듯 공신력 없는 사설탐정들에게 퍼붓고 있는 상황인듯 하다.

의심스런 장례 동영상…청부살해 가능성도

2012년 5월, 국내 언론에 조금씩 ‘조희팔 사망설’이 보도되기 시작한다. 조희팔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조심스럽게 그가 숨졌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조희팔의 비자금 및 공범자들에 대한 추적수사를 강도높게 하던 2011년 12월19일, 갑자기 조희팔 가족과 지인들이 대거 중국으로 출국했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조희팔의 근거지 5곳을 압수수색한 결과 ‘조영복’ 명의의 중국 주민증(호구부),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확보했고 조희팔의 중국 내 가명인 ‘조영복’이 중국 120(한국의 119) 응급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호송된 뒤 응급진료를 받다가 숨진 기록 및 화장 증명서도 발견했다면서 ‘조희팔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했다. 곧이어 조희팔 유족으로부터 ‘장례식 장면’이라는 짤막한 동영상을 제출받아 화장 직전 관속에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이 조희팔과 흡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곧 의문이 제기됐다. ‘중국’에선 돈만 주면 신분이나 사람, 주검을 얼마든지 구해 ‘위장 사망’을 시킬 수 있다는 추정이 가장 먼저 나왔다. 조희팔이 ‘조영복’이란 신분을 사용한 것이 근거가 됐다. 조희팔은 수만명 피해자가 자신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리고 삶이 붕괴되는 와중에도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해 온 인간이었다. 한번도 심장이나 혈관, 기타 장기에 문제가 없었을 정도로 건강했다. 또한 그의 사망 사실 여부에 따라 거액의 은닉 재산과 비자금 등의 향방이 결정되는 터였다. 그런데 그 죽음의 확인부터 화장까지 단 이틀 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 큰 의혹은 그가 사망했다는 ‘유일한 증거’인 동영상이다. 가족이 촬영했다고 하는데, 일기장에 슬픔과 추모의 글을 남겼다는 가족이 장례식과 화장 직전에 ‘증거 영상’을 찍어둘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것도 장례식 장면 전체가 촬영된 것이 아닌, 그곳이 장례식장이라는 것과 관속 인물이 조희팔이라는 것만 ‘증빙’하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이는 그 동영상의 존재 자체가 순수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자작극’의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경찰이 확보한 ‘그의 유골’은 수천도의 화염속에 산화해 디엔에이(DNA) 감식을 할 수 없었다. 화장한 유골에서 디엔에이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학수사계의 정설이다.

만에 하나, 조희팔의 사망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의 죽음은 유족 주장이나 경찰 발표처럼 ‘급성질환’으로 인한 ‘병사’는 아닐 것이라는 주장 역시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모임과 일부 전문가들은 조희팔이 숨진 게 맞다면, 그가 더이상 도피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과 여건이 조성되면서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그와 관계를 맺은 측에서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청부살해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2년 9월에는 중국에서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검찰로 들어와 검찰이 중국 공안당국에 ‘조희팔 생사 여부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그의 갑작스럽고 의심스러운 ‘사망’ 사건이 발생한 시점 역시 의혹을 부추긴다. 2010년 1월31일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조희팔이 회장으로 있던 다단계업체 ‘리브’의 경영고문이었던 A씨(43)를 검거했다. 수서경찰서는 조희팔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이기에 조희팔과의 ‘유착’ 의혹에서 자유로운 곳이다. A씨는 2008년 12월9일 조희팔이 어선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할 때, 신고를 받더라도 출동이나 검거를 하지 말라며 경찰 간부들에게 5억여원의 뇌물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던 자다. 조희팔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 미금포항에서 보트를 타고 서해 공해상을 거쳐 중국 밀항선을 타고 도주했다. A씨는 조희팔을 먼저 보내고 다른 보트로 뒤따라 밀항하려다 높은 파도 탓에 밀항에 실패한 뒤 1년3개월간 국내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끝에 검거된 것이다. 도피 기간 동안 조희팔과 연락을 지속했을 가능성이 높은 A씨로부터 조희팔의 위치나 도피생활의 특징, 그와 연계돼 협력을 주고받는 이들의 정체 등에 대한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위기감을 느낀 조희팔 혹은 그 관련 세력이 조희팔에 대한 수사기관과 언론, 사회의 관심과 추적을 중단시키기 위해 ‘사망 위장 자작극’ 혹은 ‘청부 살해’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탈탈 털어 먹은 뒤 컴퓨터 시뮬레이션 따라 도주

2004년 대구에서 ‘새로운 대박 사업’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웰빙과 건강 바람이 불고 언론에서 앞다퉈 관련 기사와 프로그램을 내보내던 터였다.‘씨엔’이라는 건강보조기구 업체에서 ‘최신형 안마기 임대사업’에 투자하면 원금보장에 매일 3만5000원, 8개월에 35%의 수익금을 준다고 하자 너도나도 참여한 것이다. 실제로 이 업체에선 1구좌당 440만원씩 투자한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수익금을 지급했다. 그러자 초기 투자자들이 가족과 이웃, 친척, 친구, 동창, 동호회 멤버, 회사 동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현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집이나 전세금 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담보로 대출까지해서 동원가능한 모든 돈을 쏟아부었다. 안마기 임대라는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 한계에 부딪치자 재건축, 부동산 임대, 관광·레저산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다.

고향인 대구에서 성공을 거둔 업주 조희팔(당시 51살)은 부산에서는 ‘팰린’, 인천에서는 ‘리브’ 등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회사명을 바꿔가며 사업을 확장해 전국에 걸쳐 15개 법인과 50곳의 센터를 운영했다. 그런데, 전국의 모텔이나 찜질방 등에 설치해 임대수입을 올린다는 사업구상은 허상에 불과했고 수익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신규 가입자가 낸 돈 중에서 일부를 초기 가입자에게 떼어주는 속칭 ‘다단계(혹은 피라미드)’ 방식으로 헛된 기대만 부풀려온 것이다. 그러다 수익배당금이 지연 입금됐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입금이 이뤄지지 않기 시작했다.

초기에 매달 꼬박꼬박 수익금이 입금되던 맛에 길들어있던 피해자들은 ‘곧 다시 입금이 재개되겠지’라는 헛된 희망에 기댄 나머지 신고를 미루다가 피해를 키우고 말았다. 대구, 부산에서만 1조원, 인천 등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서 총 1조2천억원 등, 5년 여에 걸쳐 총 3만여명이 약 4조~5조에 이르는 액수를 빼았겼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서민이었고 전 재산은 물론 가족, 친척과 지인들의 돈까지 끌어다 쓴 바람에 개인 파산은 물론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피해자 중에서 최소 10명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어설픈 사기 범죄에 이토록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데에는 유명인사들의 찬조연설과 지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 간부와 직원들의 뇌물 수수 및 방조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조희팔과 일당은 다단계식 수익금 지급이 중단되는 시점부터 피해자들이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할 시점까지 소요기간을 예상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2008년 10월말, 모든 회사 전산망을 파괴한 뒤 자산을 현금화해 챙긴 뒤 도주한 것이다. 이후 동해안, 서해안, 경기도 화성 지역 등 다양한 밀항루트를 조사, 계획한 뒤 2008년 12월9일 총 3번에 걸친 시도 끝에 충남 태안 마검포항에서 밀항에 성공한 것이다.

조희팔은 어떻게 5년여에 걸쳐 전국을 무대로 이 엄청나고 황당한 사기사건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언론과 방송을 연일 장식한 떠들썩한 공개수배에도 불구하고 여러차례에 걸친 ‘밀항’시도를 방해없이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찰과 검찰, 수사당국의 묵인과 비호가 있었다.

사건 초기 피해자들은 즉각적이고 철저하며 광범위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과 경찰은 각 지방검찰청이나 경찰서 단위로 일반사건처럼 수사를 진행하도록 해 논란과 분노를 자아냈다. 가장 대표적인 비호세력 중에는 얼마 전 비리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다가 ‘특임검사’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검찰이 사건 자체를 빼앗아가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논란을 일으켰던 김광준 검사와 대구경찰청 권혁우 총경 및 밀항을 묵인한 태안해양경찰서장 등 고위 경찰간부들이 있다. 사건 초기 피해자들의 항의로 조사를 받고 전보 조치된 권혁우 총경 등 일부를 제외하곤 이들의 혐의는 조희팔 사망 논란 이후인 2012년 5월 이후에 제기됐다. 이는 언론과 방송 등 사회여론의 관심이 집중돼야 조희팔을 둘러싼 총체적 국가비리의 ‘일부’라도 드러난다는 교훈을 준다. ‘어떤 결과라도 내놓아야’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의 분노를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다는 권력층 내의 판단 떄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9월에는 조희팔 수사 및 검거 책임을 지고 중국 출장까지 갔던 대구경찰청 소속 아무개 형사(경사)가 오히려 중국에서 조희팔을 만나 골프 접대와 술 접대를 받고 돌아온 사실이 발각돼 구속되었다. 김광준 당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당시 51살)는 2012년 11월15일, 조희팔로부터 2억4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피해자모임과 언론 등에서는 경찰과 검찰 뿐 아니라 여야 유력 정치인 중에도 조희팔의 뇌물을 받고 그를 비호한 인사들이 여럿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선 수조원대의 피해를 남긴 사상 최대의 사기 범죄자가 유유히 법망을 피해 활보하다가 해외로 도피할 수 없다. 또한 중국 정부와 공안에 대한 강하고 지속적인 협조요청 등을 통해 조희팔을 조기에 검거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피해자모임에서는 “콜럼비아에서는 1조원대 피라미드형 사기사건이 터졌을 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전면적인 조사와 피해구제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무대응을 질타한다.

대통령·국회 나서 ‘특별수사본부’설치하라 

조희팔 다단계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의 모임인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는 지금 “조희팔이 성형을 하고 여러 곳의 근거지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정보원의 제보를 들었다”고 주장하며 조희팔 생존설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초기의 미진한 수사와 대처, 밀항 방치, 뇌물 및 유착으로 인한 중국과의 국제공조 미약, 경찰과 검찰의 지나친 경쟁과 힘겨루기 등의 문제에 비춰볼 때 기존의 일상적 수사방식과 체계로는 ‘조희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구현하기 어렵다.

조희팔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억울함과 절망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여명의 자살 피해자와 자신과 가족, 친인척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생존 피해자의 절규가 대한민국의 하늘을 찢고 땅을 울리고 있다. 이들은 오직 조희팔과 일당의 검거, 비호 유착 공직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단죄 및 남아있는 범죄 수익의 몰수를 통한 피해구제, 그리고 정부 차원의 피해자 지원책 마련을 바란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조희팔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것과 조희팔과 함께 도주한 공범들의 소재 확인과 검거, 송환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 뇌물 수수 및 비호 공직자들 전체의 명단과 신원을 밝혀내야 한다. 현재의 ‘일상적인 수사체제’로는 안된다. 기존의 경찰과 검찰을 뛰어넘고 그 벽을 허문, 이탈리아의 ‘깨끗한 손’ 혹은 홍콩의 ‘염정공서’(ICAC,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같은 강하고 청렴하며 결코 타협하지 않는 동시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과 검사, 판사의 연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 결의와 협조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과연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글 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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