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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09 18:18 수정 : 2013.02.21 14:07

꽈이를 먹고 있는 실롱의 한 가게 주인.

[매거진 esc]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난생처음 인도를 가는데, 첫 여행지부터 참 흔치 않은 곳을 가게 되었다. 인도 북동부 지역 메갈라야 주의 주도, 실롱이다. 해발 1520m에 위치한 산악 도시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한데다 인기 여행지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더운 나라 인도와는 달리,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 집마다 장작을 쌓아놓은 모습이 우리네 시골 풍경처럼 낯익고 정겹다. 낯익게 하는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실롱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가 알던, 까맣고 마른 인도인의 얼굴이 아니다. 얼굴이 넓적하고 누런 것이 몽골족과 더 닮았고 그래서 우리와도 참 비슷했다.

실롱으로 가기 위해 승합차로 매일 반나절 이상, ‘고속’도로라 부르기도 민망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일행이 10명이나 되다 보니 수시로 자리를 바꿔 앉으며 가게 됐다. 마침 내가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게 됐는데, 이 운전사 뭔가 이상했다. 삐쩍 마른 체구에 어딘가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하고는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며 운전을 한다.(다행히 운전은 잘했다.) 그런데 수상한 것은 운전석 왼쪽 밑에 세워둔 100㎖짜리 물병. 생긴 건 물병인데, 안에 담긴 내용물이 빨갛다. 기침을 한참 하고는 그 물병에다 뱉는다. 으, 이건 뭐지? 지금 기침하다 피를 뱉는 거야? 저렇게 몸이 마른 것도 그렇고, 혹시 결핵 환자? 다 큰 나이에 결핵에 걸려본 적이 있는 나는 결핵 걸린 사람의 유형이나 그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안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일정 기간은 격리 생활
꽈이 열매.
을 해야 한다. 아무리 현지 관광청이 돈이 없어도 그렇지, 저런 사람을 운전사로 고용하다니! 나의 상상은 차에 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현실이 되어갔고, 그가 기침할 때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런 나 스스로를 고통스러워하며 어서 빨리 실롱에 닿기만을 바랐다. 내 얼굴은 아마 핏기가 싹 가셔 샛노란 색이었을 거다.

실롱의 한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장시간 차를 타는 괴로움보다 결핵 걸린 운전사 뒷자리에 앉아 온 것이 백배는 더 괴로웠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와 크게 심호흡부터 했다. 그리고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에게 아주 차분하고 조금은 걱정 섞인 목소리로, 그러나 원망의 뉘앙스는 느껴지지 않게 나지막이 물었다. “저, 운전사가 많이 아픈가 봐요? 뒤에서 보니까 기침을 하면서 자꾸 뭔가를 물병에 뱉던데….” 가이드의 대답은 기대(?)와 달리 즉각적이었다. “물병이요? 아~ 그거~, 꽈이예요. 꽈이를 씹다가 뱉는 거예요.”

아, 꽈이. 오다가 들른, 낚시대회가 열리던 마을에서 만난 한 아저씨의 입을 보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었다. 씩 웃으며 다가오는 그 아저씨의 이와 잇몸이 다 새빨갰다. 입안 가득 피를 머금은 드라큘라! 뒷걸음질치며 피하는 나에게 가이드가 설명했다. “꽈이라는 열매를 씹어서 그래요. 버터난 잎에 꽈이를 싸서 먹는데, 먹고 나면 몸에서 열이 나요. 실롱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는 방법이죠. 꽈이를 먹으면 이와 잇몸에 붉은 물이 들죠.”

씹어 먹는 꽈이도 있고 씹다가 뱉는 것도 있는데, 운전사는 뱉는 꽈이를 먹으며 운전했던 것이다. 꽈이는 중독성이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담배처럼 평생 꽈이를 씹어 먹으며 산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카메라 앞에서 수줍게 웃는 사람들의 이와 잇몸이 하나같이 빨갰다. 심지어 다섯살 난 아이도 이가 빨갰다. 혹시 실롱을 여행하신다면, 떼거리 드라큘라를 만나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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