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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24 17:50 수정 : 2013.04.24 17:50

이동미 제공

[매거진 esc]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바르셀로나에서 차를 빌려 프랑스 남부로 갑니다. 몽펠리에,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로 갈 거예요. 친한 친구들과 같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부러움에 가득 찬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정말 부러운 여행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오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트로앵 C4 피카소를 타고 지중해 감성 충만한 프랑스 남부 도시를 달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벅찼다. 서울에서 한국어 버전 내비게이션까지 빌려 갔다.

4월 중순, 연둣빛 새잎들이 싱그럽게 돋아난 나무 숲길을 달리며 우리는 한껏 도취되었다. 너무 들떠서 다들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잠깐, 몽펠리에까지 3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했잖아. 지금 2시간 넘게 왔는데, 왜 아직도 400㎞가 남았다고 나오는 거야?” 순간 차 안은 조용해졌고, 모두 내비게이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직도 400㎞, 즉 4시간을 더 가야 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고속도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국도를 타고 가고 있었다.(어쩐지, 길이 예쁘다 했다!) 하지만 분명히 고속도로 경유 코스로 몇 번이나 설정을 했다. 하지만 이 망할 기계는 계속 국도로만 우리를 안내한 것이다.

“저 왼쪽 도로는 뭐야? 저거 고속도로 아냐?” 우리는 어떻게든 그 고속도로를 올라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만날 것 같다가도 다시 멀어졌다. 결국 3시간이면 될 몽펠리에를 6시간 만에야 도착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언덕 위에 있는 머큐어 호텔로 가야 하는데,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내비게이션은 좁은 터널 한가운데서 계속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를 연발했다. 일방통행 길이 많은 몽펠리에에서 우리는 호텔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기 위해 시내를 몇 바퀴째 뺑뺑 돌고 있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1시간쯤 전에 길거리에서 호텔 위치를 물어봤던 프랑스 아저씨를 또 만났다. 그가 먼저 경적을 울리며 옆 차선에서 말을 걸었다. “너네 아직도 호텔을 못 찾았니?” 그는 우리가 안돼 보였는지, 자기 동네도 아니면서 찾아봐주겠다고 앞장을 섰다. 하지만 그도 못 찾는 눈치였다. 한번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를 유럽의 그 전형적인 좁은 골목길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기서 우린 딱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앞에는 청소차가 길을 막고 있고(운전사가 없다!) 길이 너무 좁아 되돌아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30분쯤 뒤에 운전사가 왔고, 짜증이 날 대로 난 아저씨는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 아주 시원하게 차의 왼쪽을 긁었다. 그리고 후진을 하다 또 긁었다. 이쯤 되자 우리는 그 아저씨가 그냥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미안함이 열기구만큼 커진 아저씨는 이제 지구 끝까지라도 같이 가서 길을 찾아줄 태세였다. 결국 2시간 만에 다른 젊은 친구들의 차 꽁무니를 따라 호텔로 찾아갈 수 있었다.

입실 접수를 하면서, 이 코딱지만한 도시에서 이 호텔을 찾느라 2시간이나 헤맸다고 하자, 그 직원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사실 못 찾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당신들만 못 찾는 게 아니죠. 정말 고생했겠어요.” ‘너 지금 그걸 위로 말씀이라고 하는 거니?!’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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