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6.19 20:09 수정 : 2013.06.20 16:00

이동미 제공

[매거진 esc]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캐논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에 렌즈는 보통 24~70㎜를 달고 다닌다. 렌즈 자체가 크다 보니, 카메라만 들었다 하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전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처럼 뭘 찍어도 관심 안 받던 호시절은 갔다. 뭘 찍든, 어딜 찍든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이왕 주목받는 거 멋지게나 보여야지 싶어 가끔 폼도 잡아본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해 대부분 호의적이다. 자연스러운 컷을 위해 몰래 찍을 때도 있지만, 필요할 때는 꼭 허락을 받는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까?”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 사진을 찍기 편한 곳은 유럽보다는 아시아다. 타이나 캄보디아 등의 나라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은 수줍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준다. 인도는 한번 찍기 시작하면 나도 찍어줘라, 얘도 찍어줘라 하면서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특히 카메라가 흔하지 않은 작은 도시로 가면, 사람들은 어떻게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몰라 부끄러워하거나 낯설어한다. 반면 아이들은 언제나 흥미로워한다. 사진을 찍고 보여주기도 하면서 같이 웃고 여행을 즐긴다.

이런 친근함과 편안함이 깨진 것은 하노이에서다.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를 찍으려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소리소리를 지르며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변명하듯 “포토? 포토?” 이랬더니, 포토는 무슨 얼어 죽을 포토냐 하는 표정으로 급기야 팔고 있던 야채를 나에게 집어 던지려고 했다. 깜짝 놀란 나는 너무 무안해져서 그곳을 허겁지겁 빠져나와야 했다. 그 아주머니는 참 과격했다. 물론 하노이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사진에 찍히기 싫다는 것은 마찬가지 의사였다. “길거리에서 장사를 불법으로 하고 있었는데, 자기 사진 찍어서 경찰서에 넘기는 줄 알고 그랬던 건 아닐까?” 다른 친구는 이런 추리를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내가 만났던 하노이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하나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경험상 사진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호주인들이었다. 이번에 선샤인 코스트로 여행을 갔을 때도 홍콩에서 온 기자가 엄마와 지나가는 아기를 똑딱이 카메라로 몇 컷 찍었는데, 아이의 엄마가 정색하고 물었다. “지금 우리 애를 찍은 겁니까? 그거 불법인 것 몰라요? 당장 지워주세요.” 홍콩에서 온 기자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사진을 지우며 확인까지 받아야 했다. 하긴 세상이 하도 흉흉하고, 만에 하나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여, 자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는 마음은 이해도 간다. 하지만 이런 기본 매너도 모르냐는 듯 야만인 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이들이 아무리 귀여워도 부모의 허락 없이 얼굴을 만지거나 손을 잡거나 하지 말아야 하듯이, 렌즈도 아무 데나 들이댔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세상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