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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8 19:55 수정 : 2013.08.29 11:32

이동미 제공

[매거진 esc]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가끔 잡지사로부터 해외 도시를 여행할 때 새로운 장소나 유행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느냐는 설문을 받는다. 출장을 가기 전 사전조사를 하긴 하지만, 주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정보를 얻는다. 사실 현지 친구들에게서 직접 듣는 정보가 가장 빠르고 생생하다. 여행지에서 그들이 소개해주는 장소를 함께 찾아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가이드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숨은 장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멕시코시티를 갔을 때도 그랬다. 내 친구의 페이스북 친구로 알게 된 작가 오라시오 카드스코(Horacio Cadzco)는 ‘명품 브랜드 양복 한 벌을 1년 내내 입으면서 누더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의 변화가 매우 흥미로웠다’고 회상했던 괴짜 작가였다. 멕시코시티에서의 마지막 날 밤, 나는 그를 따라 어느 유명 클럽의 파티에 가게 되었다. 알고 보니 고스족의 파티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차림을 하고, 검은색 매니큐어에 시커먼 머리, 온몸에 피어싱을 한, ‘메릴린 맨슨’ 같은 족속들이 모두 모여 있는 파티였다.

공포스럽기까지 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맨 꼭대기층의 바 한켠에서 친구와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당연히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한껏 겁을 먹고 있는데, 몇몇이 말을 걸어왔다. “친니? 친니?” 그 말은 중국에서 왔냐는 뜻이었고, 친구의 통역으로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생김새와는 달리, 멕시코시티의 고스족들은 매우 친절했다. 기대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나는 밤새워 그들과 어울리다 아침에 호텔에 들러 짐만 챙겨들고 공항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여행은 이렇듯 사람에 대한 예상 밖의 만남을 만들어주고, 본의 아니게 가졌던 선입견도 부끄럽게 만든다.

물론 여행지에서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나, 믿음직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은 그들 역시 믿음직스러웠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베를린에서는 항상 플래툰(서울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도 만든 집단이다) 친구들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을 보내며 숨은 명소(카터홀치히 같은!)들을 찾아다녔고, 이스탄불에서는 패션디자이너 친구 덕분에 패션 피플들이 가는 보스포루스 바다 한가운데의 멋진 수영장 ‘수아다’(suada·사진)도 가볼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에 사는 친구는 유명한 카파도키아산 와인인 투르산(Tursan)을 한 병 사서 로즈밸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차를 몰고 갔다. 그곳은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넘이를 볼 수 있는, 현지인들만 아는 장소였다. 방콕에서는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고, 치킨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신기한 음식점들에도 가봤다. 모두 현지에 사는 친구가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곳들이었다.

내게 여행은 만남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와의 만남,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음식, 문화, 그곳에만 있는 풍경과의 만남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만남은 역시 사람과의 만남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나의 여행을 풍성하게 해주고, 흥겹고 짜릿하게 만들어준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내가 혼자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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