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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3 20:33 수정 : 2013.11.14 09:35

이동미 제공

[매거진 esc]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얼마 전, 타이 치앙마이에서 있었던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의 줄임말: 여행상품이나 여행지를 홍보하기 위해 언론매체 기자를 초청해 가는 사전답사여행)에 5일간 참석했다. 그다음은 혼자 방콕으로 넘어와 12일을 더 지내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혼자 방콕으로 넘어오는 밤 비행기를 예약했다. 일정대로라면, 아니 내 시나리오대로라면 자정 무렵 서울로 돌아가는 기자들보다 내가 먼저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치앙마이에서 일정 마지막 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다음 일행들과 일정표를 확인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앗! 이게 뭐지? 항공권을 보니 그들이 비행기를 타는 날짜는 2일 밤이었지만, 방콕으로 가는 내 항공편은 3일 밤 비행기였다. 치앙마이에서 2일 함께 출발하기 위해 예약한다는 게 그만 날짜를 잘못 보고 3일로 예약한(순전히 내 잘못이다!) 탓이었다. 당장 하룻밤을 더 묵어야 할 호텔도 찾아야 했고, 혼자 치앙마이에서 하루를 더 보낸다고 생각하니 황당했다. “아…, 왜 이런 실수를 했지?” 하며 당황해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행기자 선배가 말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아, 좋겠다. 부럽기만 하구먼! 나도 하루 더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치앙마이에 홀로 남게 되었고, 일행보다 먼저 비행기를 타는 대신, 공항에서 가이드와 함께 그들을 배웅하였으며,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나온 호텔에 다시 돌아가 체크인 했다. 그것도 같은 방에. 결론은 연륜이 넘치는 선배의 말대로 나는 치앙마이에서 공짜로 하루가 더 생긴 기분을 만끽하며 보냈다. 하지만 생각했다. 왜 여행은 하면 할수록 안 하던 실수까지 하게 되는 걸까? 잡지기자 생활 16년, 여행기자로만 산 지도 6년이 넘었는데, 공항에서는 버젓이 남의 가방을 들고 호텔까지 오기도 했고, 하와이는 왜 미국이란 생각이 안 드는 건지, 공항에 비자를 챙겨 가지 않아 ‘난리 블루스’를 친 적도 있다. 베를린에서는 출국 날보다 하루 일찍 공항에 가서 세금 환급을 받으려다 “너 왜 오늘 와서 이걸 받니?” 하는 담당자의 말에 뻘쭘하게 되돌아온 적도 있다.

호텔 방에 옷 놔두고 나오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심심한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이번에 치앙마이에서 같은 호텔에 다시 체크인을 할 때 컨시어지에서는 일행 중 한 명이 옷을 두고 갔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양복 재킷에 청바지, 하얀 셔츠까지 어찌나 단정하게 걸어두고 갔던지, 두고 간 옷들을 보며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지며 웃음이 났다. 그런 식으로 내가 날린 택시비며, 호텔비, 옷값을 따진다면, 아마 다른 한 도시의 여행 경비쯤은 거뜬히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실수들에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지나고 나면 다 웃음짓게 하는 추억들이니.

나는 아직 방콕에 있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또 어떤 실수들을 하게 될까. 어떤 실수들이 내 여행을 풍요롭게 할까, 기대해본다.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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