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16 18:29
수정 : 2013.03.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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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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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수상한 북극
알래스카 코츠뷰
코츠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에무라 나오미를 생각했다. 1970년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5대륙 최고봉 잇따라 등정, 북극권 1만2000㎞ 개썰매 횡단, 그리고 알래스카 매킨리봉을 단독 등정한 뒤 하산길에 영원히 실종된 세기의 탐험가다. 그 우에무라 나오미가 그린란드에서 개썰매를 몰고 1년6개월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알래스카 코츠뷰였다. 썰매가 얼음구덩이에 빠지고, 개들은 지쳐 죽어나가고, 먹을 것이 떨어져 맨손으로 물고기 잡아먹으면서 간신히 도착한 북극의 첫 마을. 이 세기의 모험담은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안나는 썰매견 리더였던 암컷 허스키의 이름이다.
우에무라 나오미가 코츠뷰에 도착한 것이 1976년 5월이니까, 코츠뷰의 불빛이 보이려면 정말 한밤중에 도착해야 했을 것이다. 코츠뷰는 북위 66.5도. 알래스카에서도 북서쪽 끝에 있는 조그마한 해안 마을이다. 우리가 흔히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이누피아트족이 산다. 위도가 높으니, 여름엔 거의 해가 지지 않는다. 썰매견을 몬 것도 아니고, 부끄럽게도 남이 몰아주는 경비행기를 타고 내가 도착했던 6월초에도 하루에 서너시간밖에 해가 지지 않았다.
눈이 녹기 시작한 마을은 대략 난감한 모습이었다. 에스키모 마을은, 안타깝겠지만, 테마파크에 전시돼 있는 것처럼 새하얀 얼음집 이글루가 있고, 볼이 빨갛게 상기된 에스키모 어린이가 뛰어놀지 않는다. 이글루는 무슨, 에스키모들은 대부분 컨테이너로 만든 조립식 주택에 산다. 지붕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뼈가 던져져 있고, 골목엔 녹슨 철근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눈도 때가 묻어 꼬질꼬질했다. 카리부 가죽으로 만든 파카 대신, 아마도 중국산일 검은 오리털 파카를 입은 에스키모 아저씨들이 빤히 쳐다보다 제 갈 길을 갔다. 에스키모들은 속정이 진짜 깊지만 처음엔 그렇게 무뚝뚝할 수가 없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에 짐을 풀고, 혼자 쓸쓸히 옆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저녁때 호텔로 누가 찾아왔다. 아까는 출타중이라던 식당의 주인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주인아저씨는 구르듯 차에서 뛰어내려 손을 덥석 잡았다.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왔다고 해서 반가워서…. 나도 한국에서 온 지 20년쯤 돼.” 식당 주인은 재미동포였다. 미국 본토에 살다가 돈을 벌어볼 요량으로 알래스카로 올라왔단다. 이런 한국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놈(마을 이름이다)의 식당에서는 동포 아줌마가 라면을 가방에 쑤셔넣어 줬다. 북쪽 끝의 포인트배로에서는 한국인들이 식당을 주름잡고, 택시도 운영한단다. 알래스카 오지 슈퍼마켓에는 어김없이 컵라면이 있었다. ‘원주민 상회’의 먼지 낀 진열대에 김치큰사발면이며 육개장면이 쌓여 있다. 에스키모들이 물범 사냥 갈 때 챙겨 간단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서 도시락 컵라면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컵라면은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까지 북극권 전역을 조용히 휩쓰는 인기 상품인가 보다.
감격에 젖은 식당 아저씨가 싸 준 해물짬뽕을, 작열하는 햇빛에 데워 먹으며, 흘러가는 유빙들을 구경했다. 이제 막 녹기 시작한 빙산의 조각들이 천천히 호텔 앞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코츠뷰 앞바다는 축치 해. 이 바다를 똑바로 건너면 시베리아다. 코츠뷰에 도착한 우에무라 나오미도 멀리 시베리아를 바라봤을까.
최명애 <북극 여행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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