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13 21:03
수정 : 2013.03.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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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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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수상한 북극
아이슬란드 베스트만 제도 ①
케이코를 알지 않았더라면 나는 베스트만 제도(베스트만나에이야르) 같은 곳에 갈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여자아이 이름 같지만, 케이코는 범고래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프리 윌리>의 범고래, 푸른 바다 위로 훌쩍 뛰어올라 전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고래 윌리가 바로 케이코다.
케이코의 고향은 아이슬란드다. 1977년 무렵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케이코는 두 살 때 잡혀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한 수족관에 팔렸다. ‘평범한’ 쇼 고래로 살던 케이코의 인생은 92년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하면서 일대 전기를 맞는다. 영화 속 윌리는 방파제를 뛰어넘어 자유를 찾았지만, 현실의 케이코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닭장같이 좁은 수족관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황당한 아이러니에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성금을 모았다. 이어 어른들이 나섰고, 제작사 워너브러더스가 400만달러를 내놨다. 결국 95년 수족관 쪽이 케이코를 ‘윌리-케이코 자유재단’에 무상 기증한다. 케이코는 98년 마침내 그리던 고향 땅, 아니 고향 물을 밟게 된다. 미국 공군기가 수송을 맡고, 미국은 물론 대만에까지 생중계된 세기의 수송 작전이었다. 케이코가 19년 만에 찾은 고향 물이 바로 아이슬란드 남부 베스트만 제도였다.
베스트만나에이야르는 평범한 어촌처럼 보였다. 아이슬란드치고는 엄청나게 큰 동네여서, 4200명이나 사는데, 대부분 대구 어업에 종사한다. 관광 안내 표지도 곳곳에 있었다. 부둣가 이정표는 ‘우체국’, ‘은행’(하나씩밖에 없나 보다)과 함께 유적들을 가리키고 있었고, ‘옛날 옛적에 해적들이 쳐들어와 동네 사람 다 잡아간 곳’ 안내판도 있었다.
이 심심한 동네 앞바다에서 케이코는 한때를 보냈다. 클레트스비크 만은 케이코의 야생 적응 훈련장이었다. 바위섬에 둘러싸인 이 천연 가두리에서, 케이코는 쭈뼛거리며 먼바다로 나갔다. 그러나 평생을 사람 손에 자란 이 범고래는 야생에서 먹이를 찾지 않고 자꾸만 훈련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던 2002년 어느 날, 케이코는 작정한 듯 두 달 동안 쉬지도 먹지도 않고 헤엄쳐 노르웨이 해안에 닿았다. 그러고는 시름시름 앓다 이듬해 죽고 만다. 좀더 일찍 야생에 풀어줬더라면 먼바다를 유영하는 범고래의 무리에 합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한 많은 고래의 안타까운 사연은 그러나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았다! 클레트스비크 만은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러나 안내판에도, 갖가지 고래를 다 보여준다던 여행사 브로슈어에도, 온갖 잡다한 것까지 다 표시해 놓은 이정표에도 케이코의 ‘케’자도 보이지 않았다. 종일 최선을 다해 찾아봤지만, 케이코의 흔적이라곤 공항 진열장에 전시된 갖가지 동물 인형들 중 범고래 인형(사진)도 하나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호수처럼 잔잔한 클레트스비크 만의 초록 바다를 보면서 고민했다. 외계인이 찾아와 기억을 소거했거나, 동네 주민들이 케이코를 집단적으로 해코지하고 은폐한 게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다. 케이코가 대구 어장을 망쳐 놨나. 맘 상한 동네 사람들이 몰래 찾아와 돌이라도 던졌나. 아이슬란드가 아직도 포경 국가여서 ‘고래 보호’의 상징인 케이코를 미워했나. 아니면 그저 대구 조업에 바쁠 뿐이었나.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데, 케이코의 흔적은 어디로 갔나. 미스터리다.
최명애 <북극 여행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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