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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1 20:31 수정 : 2013.09.12 15:38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노르딕 하우스의 책과 의자들. 최명애 제공

[매거진 esc] 수상한 북극

알바르 알토라는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가 있다.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인데, 몇주 전 <한겨레>에 실린 핀란드 산타마을 기사에도 잠깐 나왔다. 산타마을뿐 아니라 핀란드 전체에 이 사람이 지은 건물이 천지다. 지금 막 위키피디아로 찾아봤더니 160개가 넘는단다. 이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건축 설계 집단 수준이 아닌가? 이 대단한 건축가의 얼굴은 핀란드 지폐에도 나온단다. 그런데 나는 왜 한번도 본 기억이 없을까? 봤을 리가 없다. 핀란드는 2002년 유로화로 전환했다. 알토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어쨌거나 ‘남의 가우디 북의 알토’. 남유럽에 가우디가 있으면 북유럽에는 알토가 있다. 알토의 은총은 세상의 변방 아이슬란드까지 미치사, 레이캬비크에는 알토가 지은 ‘노르딕 하우스’라는 건물이 있다. 문자 그대로 북유럽 도서관인데, 건물부터 의자, 조명, 문손잡이까지 모두 알토가 설계한 ‘알토 토털 숍’쯤 된다. 매일 하는 가이드 투어는 이미 끝났고, 심심한 도서관 직원이 가이드를 해 주겠다며 따라왔다.

“이 건물 외관은 화산이 울뚝불뚝 솟아 있는 아이슬란드의 평원을 형상화했어요.” “해가 짧은 아이슬란드의 겨울을 감안해 빛이 잘 들어오도록 설계했죠.” 그러나 정작 탄성은 도서관 열람실 문을 열자 터져나왔다. 천장이 높고 비스듬하게 빛이 들어오는 도서관. 줄 달린 안경을 쓴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백화점 카탈로그에,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바로 그 ‘북유럽 스타일’이었다. 직원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여기도 알토” “저기도 알토” “알토가 다 만들어”라며 구석구석을 가리켰다. “와, 이 의자도요?” “아, 아니, 저, 그 놀이방 가구는 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건 이케아에서….”

그러나 내 눈에는 이케아와 알토가 구분되지 않았다. 모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고 실용적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낙원을 만들어 주고 싶다’던 알토나 전세계에 값싸고 예쁜 가구를 공급하고 있는 이케아나 취지는 비슷한 거 아닌가. 다만 알토는 몰랐겠지. 이케아가 만드는 ‘낙원’ 때문에 여러 나라의 토착 가구 산업이 빛의 속도로 붕괴될 줄은.

어쨌거나 노르딕 하우스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북유럽 도서관이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노르딕 하우스는 책과 디브이디 외에 특이하게 ‘그림’도 빌려주고 있었다. “한번에 3점 빌려가서 3개월 동안 걸어뒀다가 반납하면 돼요. 그리고 또 3점 빌려가서 걸고요. 호호.” 음, 그래서 북유럽 스타일에는 항상 여기저기 액자가 걸려 있었던 건가?

핀란드인 알토가 아이슬란드에 지은 이 도서관에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5개국 언어로 된 출판물 3만권이 소장돼 있다. 우리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듯 북유럽도 ‘북유럽 공동체’를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직원부터가 스웨덴에서 태어나 노르웨이에서 자라 아이슬란드로 시집온 ‘북유럽 코즈모폴리턴’이었다. 아이슬란드 어린이들은 아홉살부터 덴마크어를 배우고, 핀란드 어린이들은 스웨덴어를 배운단다. 그럼 두 나라 어린이가 만나면 무슨 언어로 이야기할까? 빙고, 안타깝게도 영어다.

최명애 <북극 여행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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