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31 18:40
수정 : 2013.03.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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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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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한남동 작은방
인테리어라는 것을 처음 해본 것은 대학 졸업 뒤 첫 자취방을 얻었을 때였다. 그때 <커피프린스 1호점>이란 드라마가 인기 절정이었는데, 부암동 산자락에 위치한 이선균의 집과 서울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공유의 집은 남자의 로망에 불을 지폈다.
당연하지만 남자들도 멋진 방에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예비군복이 걸린 2단 행거와 짙은 갈색 책상과 책장, 의자가 끝. 이런 방에서 살고 싶었겠는가. 집주인들의 취향이 하나같이 후진 것을 어떡하나. 꿈을 안고 홍대 앞으로 가서 계약한 전세 5000만원짜리 방도 그랬다. 바닥엔 노란 장판, 체리색 문과 문틀은 당연지사. ‘현실과 이상의 어마어마한 괴리.’ 이것이 독립을 꿈꾸는 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진리이다.
그 간극을 줄여보고자 폭풍검색으로 드라마 속의 애플그린색 페인트로 벽지를 칠하고, 문짝을 다 사포로 갈아내고 흰 페인트로 칠했다. 뿌듯했지만 동시에 덜컥 겁이 났다. 집주인한테 말도 안 하고 집을 고친 것이다. 아니 뭐 더 예뻐졌는데 어때! 그런데 인터넷을 보니 정말 진상 주인을 만날 경우, 원래의 촌스런 벽지를 다시 바르고 페인트도 일일이 벗겨내라고 했다는 후기도 있었다. 헉! 그러던 어느 날 세면대가 고장났는데 출근을 해야 해서 집주인이 방을 들어가 보게 된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두근두근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집주인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총각, 방이 너무 환상적이야! 수리비는 서비스♥♥♥”
머리가 벗겨진 오십대 아저씨로부터 하트를 세 개나 받을 줄이야! 그렇지만 이것은 성공적인 케이스일 뿐, 방을 계약할 때 인테리어에 대한 명시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못 하나만 박아도 원상복구를 하라고 펄쩍 뛰는 집주인도 있으니까. 전월세의 원상복구란 기본시설물의 고장·파손 때를 말하는 것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그렇지만 그 기준을 무 자르듯 나눌 수가 없고 괜히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으므로 모든 일은 집주인에게 미리 허락을 받는 것이 좋다.
지금 사는 집을 계약할 때는 ‘고치든 때려부수든 맘대로 해도 좋다’는 집주인의 파격적인 멘트를 받아냈다. 재개발 지역인지라 주인은 집에 대한 미련이 없기도 했고, 집을 확 바꿔 놓을 거라며 전문가인 척하는 나의 자신감도 한몫했다. 셋방 인테리어는 협상이다.
우연수집가 moment6.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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