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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26 17:22 수정 : 2013.03.11 15:58

[매거진 esc] 한남동 작은방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가치

연말이라 또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올 한 해 동안 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의 시작이 된 한남동 작은방도 참 많이 변했다.

어차피 이사 갈 전셋집을 왜 고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것은 오리털 점퍼 하나만 있으면 되지 뭐하려고 새 코트를 사느냐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옷은 추위를 막는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셋방살이도 마찬가지로 내 집을 갖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버티기 위해 생존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 질문이 생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방이 옷이나 자동차처럼 늘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전셋집은 남의 집인데 왜 남 좋은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만의 일상이다. 그리고 돈보다 소중한 것이 시간이다. 집은 내 집이 아닐지언정 계약한 최소 2년이라는 시간은 나만의 것이다. 오히려 내 집을 가질 나이가 되면 느끼기 힘든 젊은 날의 감성과 자유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 공간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사치가 아닌 창의적 낭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몸살을 앓아가며 스스로 페인트칠과 톱질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칼럼은 꾸밈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여가활동을 통해 창작 훈련을 조금씩 해보려고 그에 맞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이슈가 되어 목표를 실현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올해 초 회사생활을 그만두었고, 꿈이었던 책을 냈고, 또 하나의 꿈이었던 소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렇게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변화가 아닐지라도 공간을 꾸미고, 일상을 가꾸는 작업은 소소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허름하고 오래된 재개발 지역의 집일지라도 전에 살던 깨끗한 빌라촌의 집보다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마당 한쪽 텃밭에 씨를 뿌린 일, 그것을 수확하여 마당에서 같이 고기를 구웠던 일, 매일 찾아오는 길고양이를 위해 집을 지어 주었던 일, 이웃을 위해 우체통을 달아준 일, 크리스마스에 장식을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초대한 일 등 이 집에서 가지게 된 추억이 많다.

단순히 낭만적인 사고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미 투자한 비용을 회수했고(책도 내고 이렇게 칼럼도 쓰고 있으니), 집에서의 잦은 모임 덕분에 많은 인맥을 만들었다. 만약 내 방을 ‘퇴근 후에 옷을 행거에 던져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잠든 후에 다시 출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모든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예쁜 인테리어가 아닌 변화를 위한 인테리어라고 한다면 이제 당신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글·사진 우연수집가 moment6.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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