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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09 18:38 수정 : 2013.03.11 15:56

우연수집가 제공

[매거진 esc] 한남동 작은방

‘해’라는 말은 참 좋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라고 다시 기회를 주는 듯하다. 이사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익숙해진 일상을 다른 동네, 다른 집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 나는 ‘이사중독자’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생활의 변화가 좋다. 새로운 음식점, 새로운 출근길, 새로운 가구 배치까지 찌뿌드드한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회사 근처를 마다하고 한남동이라는 동네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그런 자극 때문이었다. 한남동은 참 특이했다. 남산을 뒤로하고 한강을 앞에 둔 최고의 배산임수 지역이라 금싸라기 땅 같은데 언덕을 빼곡히 채운 집들은 낡아서 달동네같이 보이기도 했다. 저녁 무렵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 실루엣을 보고 있으면 프랑스의 몽생미셸이나 그리스의 산토리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호기심이 생겨 카메라를 들고 한남동 동네 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입지가 좋기 때문에 이미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있었지만 서울에 몇 개 남지 않은 오리지널 골목길이 있었다.

동네 꼬마들이 놀고 있던 미로 같은 골목을 타고 언덕 꼭대기에 오르니 상상의 세계를 만난 듯 도깨비시장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아주머니들이 머리를 말고 있는 미용실과 떡집을 지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이슬람 성원이 나타난다.

이슬람 성원 근처의 카레 가게에서는 알싸한 향신료 향이 나타나고, 어느 상점의 아랍인 아저씨가 “오늘은 순댓국 먹지!”라고 분명한 발음으로 외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트랜스젠더 바와 클럽이 나타나더니 이태원에 도착하자 외국인들과 스타일이 멋진 아가씨들이 가득했다. 이것 참 재밌는 동네일세.

그날의 경험 때문에 난 다음 이사할 곳으로 한남동을 선택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날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도 따뜻하고 재미있는 느낌이 들었다.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 목적이라면 이런 오색 빛깔 나는 동네에 있어야 자극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때로는 집은 정착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임시 거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네의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동네를 탐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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