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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3 18:40 수정 : 2013.04.03 18:40

우연수집가 제공

[esc]한남동 작은방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본 게 언제였을까. 이럴 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없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 단체 행사로 심어보았을 법도 한데 우리 학교는 그냥 잡초 뽑는 것으로 대신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이미 입시교육이 시작되어, 활엽수나 침엽수 대신 뇌에 국영수를 심기에 바빴다. 참으로 삭막한 교육이다.

아저씨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삼십대가 되자 비로소 나는 스스로에게 정서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한남동 집을 계약하게 된 것도 그런 목적과 관련이 깊다. 40년 묵은 오래된 집을 보러 갔을 때 나는 넓은 마당과 화단에 마음을 빼앗겼다. 화단에서 꽃을 가꾸고 채소를 키우면서 나의 정서 또한 무럭무럭 자랄 것 같았다.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 화단을 가지게 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심기로 했다. 4월5일 식목일에 아침 일찍 화단을 고르고 씨앗을 뿌렸다. 해바라기는 참새의 공격과 가뭄을 이기고 두 달 만에 키가 나만큼 자랐다. 내가 뿌린 씨앗에서 생명이 나와 성장해가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구석이 있다. 해바라기 꽃이 만개하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나비와 호박벌이 날아들었다. 자연 현장학습을 하는 기분이었다. 도시 남자에게 꼭 필요한 아름다운 학습이었다. 나는 해바라기 씨 수천개를 수확한 뒤 동네의 특정 장소에 숨겨 놓고 블로그 이웃들에게 찾아가게 했다. 일종의 보물찾기 놀이였다. 화단이 나를 아이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해바라기 자손들은 서울 곳곳에 퍼져 다시 자라났다.

이듬해에는 화단을 텃밭으로 변신시켰다. 봄에 친구들을 불러 상추와 들깨, 청경채, 쑥갓, 방울토마토 등을 같이 심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을 때 씨앗을 뿌린 친구들을 다시 초대했다. 그리고 쑥쑥 자란 채소를 수확하여 마당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우리가 같이 씨를 뿌렸던 그날의 추억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해바라기를 심었던 내가 그랬듯이 친구들도 자신들이 심은 채소가 싱싱하게 자란 모습에 고무된 모습이었다.

회색빛 도시 생활에서 땅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흙은 주인의 감성을 자라게 한다. 이번 식목일에는 흙의 주인이 되어보자. 시에서 주관하는 도시 농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옥상이나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만들 수도 있다. 그것도 어렵다면 다이소에서 파는 천원짜리 상추 키우기 세트를 사서 책상 위에서 키울 수도 있다. 그곳이 어디든 많은 이야기들이 자라날 것이다.

우연수집가 poeticz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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