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15 18:25
수정 : 2013.05.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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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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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한남동 작은방
‘집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아파트 과장 광고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례가 여기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재개발 지역의 40년 된 허름한 전셋집. 집을 마음대로 고쳐도 좋다는 집주인의 말에 그곳으로 이사를 해서 1년간 꾸준하게 인테리어를 해나갔다. 처음에는 못질 하나 제대로 못 했지만 나중에는 책상도 만들고 지중해풍 선반도 달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이슈가 되었고, 어릴 적 꿈이었던 책도 쓰게 되었다. 회사 생활도 그만두고 지금은 서촌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하고 있다.
특이한 경우이기는 하다. 자신의 원룸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해서 누구나 진로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굳이 회사에서 떨어진 한남동을 택한 것도, 허름하긴 하지만 마당과 화단이 딸린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창조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어릴 적 느꼈던 ‘만들기’의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연봉과 더 좋은 차를 끄는 것보다 자전거 바퀴로 조명을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감이 더 컸다. 돈도 중요하지만 있다가도 없는 게 돈과 직위라면 내가 만들어 내는 작업들은 온전한 나의 것으로서 끝까지 남는다.
자투리 목재로 이웃을 위한 편지함을 만들어 몰래 달아놓았고, 길고양이를 위한 집을 만들었다. 봄이면 직접 만든 식탁을 마당에 내놓고 향기 맡으면서 지인들과 ‘라일락 파티’를 했다. 회벽으로 만든 스크린에 프로젝터를 쏘아 친구와 영화를 보고, 축구를 응원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드리워진 라일락 나뭇가지에 트리 조명을 매달았다. 이런 좋은 장난과 추억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창작을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 공간부터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수단이 목적을 바로 가져다줄 줄은 몰랐다. 내가 원하는 많은 것들을 얻었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나는 또 이사를 했다. 지금쯤 라일락 향기 가득할 한남동 작은 방이 그립기는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경험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내가 가꾼 그곳엔 또 다른 식구들이 기대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분들께도 내가 경험한 만큼 좋은 추억을 줄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란다.
고마웠어요.
우연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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