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8 18:38
수정 : 2013.05.08 18:38
|
최지현 제공
|
[매거진 esc]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
국내에도 유기농화장품 인증기관이 설립될 모양이다. (재)제주테크노파크가 유기농화장품 인증시스템 모델을 개발했고 얼마 전 설명회도 열었다. 그동안 해외 인증을 받느라 쏟아부은 외화를 생각하면 바람직한 일이다. 제주도는 이외에도 지역 농가와 연계하여 원료를 개발하고 생산 공장을 확충하는 등 유기농화장품산업의 글로벌 메카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제주도의 계획이 잘되길 응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믿음을 더욱 부풀리는 계기가 될까봐 불안하다. 유기농화장품은 일반화장품보다 훨씬 순하고 효과가 좋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지금의 1000억원 시장 규모로 자랐다. 하지만 지금껏 어떤 실험도 이걸 명확히 증명해낸 적이 없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기농 혹은 천연이라고 해서 합성 성분보다 안전하다고 해석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 농무부도 “인증마크가 붙어 있다고 해서 더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기농인증제도는 마케팅 프로그램이지 안전성 보증 프로그램이 아닌 셈이다.
기업들은 이 마케팅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유기농 함량이 높을수록 여드름과 아토피가 사라지고 온갖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과장한다. 당신의 피부는 소중하니까, 당신의 아이의 피부도 소중하니까, 좀 비싸더라도 최고의 제품을 바르라며 여자들의 허영심을 긁어댄다. 천연성분 중에도 위험한 성분이 수두룩하고 다량의 천연방부제 함유, 빠른 부패 등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제주도가 인증기관 설립에 성공한다면 상업주의에 편승하지 말고 올바른 지식을 알리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유기농화장품 인증은 단지 원료 중 몇 %의 출처가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식물성분이라는 걸 증명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아울러 유기농화장품을 써야 착한 소비자라는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의 유기농화장품산업은 몸에 바를 단 30㎖의 로즈오일을 얻기 위해 멀쩡한 농경지를 원료생산지로 바꾸고 6만송이의 장미를 소비한다. 엄청난 화석연료를 태워가며 비행기로 배로 원료와 제품을 실어 나른다. 진정으로 착한 소비자라면 제조와 운반에 최소한의 석유를 소비하는 국산 제품을 써야 마땅하다. 만약 제주도가 지역 농작물을 유기농 원료로 효과적으로 개발해낸다면, 그리고 우리 기업들이 이 원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친환경에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다.
최지현 화장품 비평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