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7 19:14
수정 : 2013.07.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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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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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
요즘 홈쇼핑이나 화장품 광고를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등장하는 판매 수법이 있다. 바로 ‘유해성분 무함유’라는 주장이다. 유해성분의 가짓수도 계속 늘어난다. 제품에 따라 ‘7가지 유해성분 무함유’, ‘11가지 유해성분 무함유’, 심지어 아기 전용 제품에 이르면 ‘30가지 유해성분 무함유’라는 주장도 있다.
소비자들은 그만큼 안전하다고 느끼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한 클렌징 제품은 ‘색소, 알코올, 탤크, 벤조페논 무함유’라고 주장한다. 색소와 알코올은 이해가 가지만 나머지는 무슨 억지일까? 탤크는 피지흡수와 잡티 커버를 목적으로 색조 제품에 널리 쓰이는 원료이고 벤조페논은 자외선 차단 성분이다. 애초부터 클렌징 제품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제품은 ‘7가지 유해성분 무함유’라고 주장하면서 그 하나로 스테로이드를 꼽았다. 스테로이드는 화장품에 넣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성분을 넣지 않았다고 자랑하다니 코미디가 아닌가! 마치 빵집에 “우리 빵에는 공업용 색소를 넣지 않습니다”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는 것과 같다.
아기 전용 제품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더욱 상세하고 집요해진다. 방부제, 향, 색소, 동물성 원료 등의 차원을 넘어서 미네랄오일, 파라벤, 페녹시에탄올, 계면활성제 등 특정 원료를 콕 집어서 무함유 주장을 펼친다. 이 긴 리스트를 읽다 보면 엄마들은 겁이 덜컥 날 것이다. 이 엄청난 유해물질로부터 내 아이의 피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 제품을 써야겠다는 확신에 불타게 된다.
결국 무함유 주장의 목적은 안전성에 대해 겁을 주어 해당 제품을 더 많이 팔려는 불안 마케팅이다. 그 대가로 훨씬 안전한 화장품을 쓰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화학 향은 자극적인 허브 향으로 대체되고, 화학 방부제와 계면활성제는 출처만 식물일 뿐 결국에는 비슷한 방부제와 계면활성제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무함유 주장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것이 멀쩡한 성분까지 유해성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네랄오일과 탤크, 계면활성제, 파라벤이다.
미네랄오일과 탤크는 미국 소비자보호단체인 이더블유지(EWG)가 각각 유해성 2~4, 0~4로 평가하는 안전한 성분이다. 그런데 미네랄오일은 그 출처가 원유라는 이유로 갑자기 ‘석유 찌꺼기’라는 공격을 받고 있고, 탤크는 석면의 출처가 되었다는 이유로 천하의 몹쓸 원료로 추락했다. 계면활성제와 파라벤은 발암물질이라는 이유로 신랄한 공격을 받는데, 실제로는 피부에 미량을 바르는 것으로 암을 일으킬 확률이 희박하다. 특히 논란이 심한 파라벤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배합한도 내에서는 안전하다고 대한화장품협회가 밝히고 있다.
실제로 화장품 회사들은 한쪽으로는 화학성분의 위험성을 과장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이 성분들이 들어간 화장품을 팔고 있다. 그렇게 위험하다면 어째서 소비자가 이 성분들을 계속 바르도록 내버려두는지 화장품 회사들은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 역시 아무리 내 피부가 소중하고 내 아이를 사랑한다 해도 지갑을 열기 전에 상술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보길 바란다.
최지현 화장품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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