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11 19:58
수정 : 2013.09.12 15:38
[매거진 esc]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
패션계에 한참 컬래버레이션이 유행하더니 화장품 브랜드들까지 컬래버레이션 열풍이다. 유명 화가가 메이크업 제품의 케이스를 디자인하고, 싸이와 지드래곤이 자신이 모델로 활동하는 브랜드의 포장을 디자인했다. 또 화장품 회사가 초콜릿 회사나 보석 회사와 손을 잡고 제품 디자인과 광고를 함께 하는 ‘마케팅 컬래버레이션’도 유행중이다.
우선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렇게 어려운 영어를 굳이 써야 하는가? 5000만 국민 중에 이 용어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냥 ‘협업’이나 ‘제휴’라고 하면 안 되는 걸까? 아, 협업이나 제휴라고 하면 패셔너블하고 아티스틱하게 들리지 않으니 폼이 좀 안 나긴 하겠다. 하지만 너도나도 혀를 굴리며 컬래버레이션을 외치니 지겹다. 나 혼자만이라도 ‘협업’이라고 말해야겠다.
협업 제품을 설명할 때 화장품 회사들이 늘 덧붙이는 수식어가 있다. “화장품과 예술의 만남”, “문화를 담아낸 화장품”, “한정판”, “소장가치 상승” 등의 표현이다. “예술 작품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드문 소비자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선사한다”는 낯 뜨거운 표현도 있었다.
어떤 물건이든 구입할 때 좀더 예쁘고 화려한 디자인에 끌리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옷이나 가구, 전자제품 등을 고를 때 단순히 기능만으로 고르지 않듯이 화장품도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고르는 걸 비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화장품은 소모품이다. 아무리 예쁜 디자인이라 해도 그걸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년이다. 또한 화장품은 피부 건강과 직결되기에 보기 좋은 디자인을 따지기 전에 내용물을 안전하게 잘 보관해야 하고 쓰기에 편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인 것은 내 피부에 안전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효과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화장품 협업 제품들은 이런 우선순위를 헛갈리게 한다. 여성의 심리를 자극하는 예쁜 디자인과 인기 연예인을 동원한 마케팅으로 내용물이 어떠하든 우선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한정판’, ‘소장가치’ 등의 표현은 이 제품들을 아주 희귀하고 비싼 물건으로 둔갑시켜 실제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하게 만든다. 1년 뒤면 결국엔 쓰레기통에 들어갈 물건을 2~3배 높은 값을 주고 구입하게 하는 것이다.
화장품 회사들이 협업 제품을 한정판으로 내놓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결코 제작하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소비자에게 문화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제품의 가치를 부풀려 높은 가격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제품 디자인에서 꼭 따져봐야 할 것들은 따로 있다. 우선 화장품이 투명한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지는 않은지, 입구가 넓은 항아리 모양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피부에 좋은 성분들은 거의 대부분 공기와 빛에 예민하기 때문에 반드시 불투명한 용기에 담겨 있어야 하고 입구가 좁게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지나치게 화려한 포장, 과대포장이 된 제품은 자원의 낭비이므로 사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화장품을 고르는 절대적이며 유일한 기준은 성분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디자인이 예쁘고 말고는 그다음이다.
최지현 화장품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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