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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0 21:00 수정 : 2013.11.21 11:01

[매거진 esc]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
풀메이크업으로 잠들고 싶으신가

거짓 미용정보를 만들어내는 매체는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매체는 단연 홈쇼핑이다. 쇼핑 호스트의 현란한 말솜씨, 예쁜 연예인의 등장, 드라마틱한 비포 앤 애프터 화면, 마치 여자들끼리의 질펀한 수다 떨기 방식의 진행은 시청자의 눈과 귀를 홀린다. 공상과학영화 같은 허황된 약속과 정보들이 난무하지만 진행자 중 어느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않는다. 가장 나쁜 건 이것이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엄연한 상행위라는 점이다.

최근 소위 말하는 ‘완판’ 신화를 쓰고 있다는 ‘기미 잡는 크림’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쇼핑 호스트들은 이 제품을 손등에 바르자마자 밝고 환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놀라운 미백 효과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비포 앤 애프터 화면은 마치 마술을 부린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미백 성분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낼까?

이 제품에 알부틴이 들어 있으니 어느 정도의 미백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에서 보여주는 기적 같은 미백 효과는 알부틴의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알부틴보다도 훨씬 많이 함유된 티타늄디옥사이드(사진)의 착색 효과이다.

티타늄디옥사이드는 자외선 차단 성분인데 여기서는 피부를 일시적으로 하얗게 만드는 착색제로 쓰였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구입한 소비자들은 매일 밤 자신도 모르게 자외선차단제를 듬뿍 바르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바를 때마다 하얗게 변하는 피부를 보면서 기미가 사라지고 있다며 만족하지만 그것은 세수를 하면 지워지는 화장 효과일 뿐이다.

다행히 티타늄디옥사이드는 순해서 피부에 무리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도 하얗게 화장을 하고 그것을 자신의 맨얼굴이라고 믿는 여자들의 현실이 씁쓸하다. 마치 비비크림을 바른 피부를 자신의 생얼로 받아들이고 포토샵을 한 사진을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여자들은 이러한 위장 제품을 밤낮으로 바르면서 하얗고 맑은 피부를 가진 자신의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를 창조해낸다. 착각과 환상. 어쩌면 화장품회사들은 이것이야말로 이 혹독한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될 거라는 걸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착각과 환상을 파는 화장품은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눈가 주름을 60초 만에 지워준다는 크림은 실제로는 주름 위에 얇은 막을 입히는 피막형성제의 효과이고, 눈가의 다크서클을 사라지게 해준다는 아이크림은 실제로는 착색제의 커버 효과이다. 이제 화장품은 기초와 메이크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머지않아 풀메이크업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외모 가꾸기가 여자들의 일상을 지배해버리는 세태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뭘 구입하는지 정도는 알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홈쇼핑 ‘완판’ 신화에 빛나는 ‘기미 잡는 크림’의 실체는 미백과 주름개선 성분이 함유된 자외선차단제이다. 분류하자면 안색을 하얗게 만들어주면서 올인원 기능을 주장했던 시시크림과 흡사하다. 소비자들은 밤마다 시시크림을 바르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제발 국어사전에도 없는 ‘완판’이라는 말 좀 그만 쓰자. 이것이 국내의 일본 문화 마니아들이 생각 없이 퍼다 나른 일본말이라는 걸 알고나 쓰는 걸까? 사진 최지현 제공

최지현 화장품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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