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3화]
여집합
내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동안에도 지구는 부지런히 태양 주위를 돌았고, 덕분에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나는 벌벌 떨었다. 높고 커다란 시베리아고기압이 와그작와그작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랑잎과 쓰레기는 만취한 망나니처럼 데굴데굴 구르고, 털을 세운 길고양이는 못생긴 나를 꺄오꺄오 꾸짖고, 가로수 그림자는 정신없이 가물거리고, 태양은 번쩍거렸다. 하늘도 땅도 우주도 사람도 우라질 마음도, 뭐 하나 가만있는 게 없었다. 죄다 변하고 움직였다.
버스 안 라디오에서 노래 세 곡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전부 처음 듣는 노래였고, 죽도록 너를 사랑한다거나 죽도록 너를 미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승객들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소곤거리거나 말다툼을 했고, 혼자인 사람들은 통화하거나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 모두 사랑하는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카페나 식당을 채운 사람들,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인이었다. 대로변의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스릴러 영화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는데, 영화의 카피마저 사랑과 배신이 이러쿵저러쿵이었다. 발에 채일 만큼 흔해 빠진 게 사랑이고 이별이었다. 무슨 세상이 이따위고, 어째서 인간들은 이다지도 시시한가 싶었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 친구가 말했다.
그건 사랑보다 소유욕이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별짓 다 해서라도 갖고야 마는 사람들 있잖아. 그냥 이렇게 생각해. 네가 싫어졌다기보다 그냥 더 갖고 싶은 게 생긴 것뿐이라고. 그 말을 듣자 가파르게 슬퍼졌다. 그게 그거 아닌가? 겨우 되물었다.
글쎄. 파전을 젓가락으로 갈기갈기 찢으며 친구가 중얼거렸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친구는 젓가락을 간장에 콕 찍어 찢어진 파전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이게 사랑이라면. 동그라미 속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덧붙였다.
이게 소유욕인데, 여기 봐. 소유욕 아닌 다른 부분도 있잖아. 근데 걔한테는 사랑이 곧 소유욕이었던 거야. 다른 여집합이 없는 거지. 친구는 자신의 말을 증명할 구체적 사례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재작년 여름에, 작년 초에, 너희 처음 만났을 때……. 친구가 기억하는 많고 많은 사례 중 어떤 것은 내 기억에 없었고, 또 어떤 것은 내 기억과 미세하게 달랐다. 미세한 차이가 전체를 왜곡했다. 친구 말을 들으며 노마를 생각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 말대로 내가 사랑과 소유욕을 헷갈렸다면, 그 헷갈림의 기원은 노마에게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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