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4화]
놀이
나도 오징어를, 다방구를, 카바를, 고무줄을, 돌공기를 하고 싶었다. 손과 옷을 더럽히며 놀고 싶었다. 여럿이 어울려 비슷한 공기를 마시는 그들의 대기권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놀이를 잘하지 못해 그들을 실망시킬까 봐. 방해될까 봐. 그래서 놀이에 끼워주지 않을까 봐. 지역마다, 학교마다 놀이 규칙은 조금씩 달랐다. 멀리서 지켜보며 그들의 규칙을 익힐 만하면 나는 다시 새로운 규칙 속에 놓이곤 했다. 세 번째 학교에서부터, 나는 떼 지어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척했다.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척했다. 전학과 동시에 서둘러 그런 오해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이름이나 시간표를 외우는 것은 다음 문제였다. 잠깐 즐겁다가 결국 버려지느니,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편을 선택한 것이었다.
노마 역시 전학생이었다. 나보다 두 달 먼저 전학 왔다고 했다. 노마가 나타나자 학교에서 제일 오래된 대왕 벚나무가, 그럴 때가 아닌데도 꽃잎을 후두두둑 떨어뜨리더니 단숨에 말라버리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아무튼 노마는 나와 달랐다. 규칙을 몰라도 일단 판에 뛰어들었다. 뛰어들어서 놀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이상했다. 엉망진창 놀이를 하면서도 모두 즐거워했다. 다들 웃음병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노마 때문이었다. 노마의 초능력이었다.
노마가 좋았다. 부러웠다. 노마의 모든 것이 탐났다. 좋고 부럽고 탐나는 그것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마음먹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몰랐다. 여럿과 친해지는 방법은 더더욱 몰랐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으로 함께 즐기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겁부터 났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 나만의 공. 내겐 그것이 필요했다.
연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김치와 쌀과 햄을 샀다. 밥을 안치고 냉동실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읽다가,
“얘야, 넌 평생 연기를 해왔잖아.” 언제나 감이 좋은 애나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지, 그렇지?” 그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인정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되길 바라면서, 어울리고 더 나아지려 노력하며 일생을 보냈다.*
라는 문장과
마릴린은 동정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조작하는 걸로 알려졌다. 마릴린 먼로의 과거사를 정리하면서 겪은 문제들 중 하나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그녀의 과도한 상상으로 인한 산물인지를 구별해내는 일이었다.**
라는 문장에 걸려 넘어졌다. 그래서 찢었다. 김치와 밥을 팬에 붓고 대충 볶았다. 햄도 썰어 넣을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맛있자고 먹는 게 아니었다. 조각낸 종이를 파슬리 가루처럼 볶음밥 위에 뿌렸다.
‘얘야, 넌 평생 연기를 해왔잖아’라는 문장을 먹으며, 연애하는 동안 내가 했던 숱한 연기를 떠올렸다. 연기가 필요했다. 그것 없이는 사랑할 수 없었다. 좋긴 좋지만 조금 더 좋은 척. 만족스럽지만 조금 더 만족스러운 척. 조금 더 행복한 척. 더 많이 이해하는 척. 더 좋은 사람인 척. J 앞에서의 나는 본래의 나에서 8도 정도 어긋난 나였다. 미세한 각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벌어졌고 J 앞에서의 나도 본래의 나에서 서서히 멀어졌지만, 본래에서 멀어진 나도 나였다. 그러므로 그것이 연기였는지, 나의 본래 모습이었는지 단정할 수 없었다.
J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게 사랑이라면, J는 처음 내게서 느꼈던 감정을 새로운 대상에게 다시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변한 것은 J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자꾸 변하는 나는 그 감정에서 미끄러지고, 변치 않는 그 감정에 딱 들어맞는 새로운 대상이 나타난 것인지도. 절반의 사실과 절반의 해석. 노마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만을 말하자면, 우린 헤어졌다. 그뿐이다. 사실은 너무 간명하고, 간명한 한 문장으로 지난 삼 년을 정리하자니 서글프고 헛헛하니까, 연애가 끝난 후에도 나는 조금 더 슬픈 척, 조금 더 화난 척, 조금 더 의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나의 연애에 대해 나와 다른 기억을 가진 것도 나 때문이다. 친구가 알고 있는 J와 나의 사연은 나의 언어와 감정으로 왜곡되어 전달된 것이니까. 과장되고 왜곡된 그것을 친구는 자신만의 언어와 감정으로 다시 조작해 기억의 저장고에 쑤셔 넣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치와 밥에 뒤섞인 마릴린을 꼭꼭 씹어 먹으며 생각했다. 조작될 수밖에 없는 기억과 그것이 전달되는 과정에 대해. 그로 인해 재창조되는 수많은 이야기와,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진실, 혹은 존재하지 않는 진실에 대해. 마릴린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에 상상을 덧붙여 과거를 과장했을 것이다. 상처 입은 사과가 더 맛있는 것처럼,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혹은 그렇게 의지하는 방법밖에 몰랐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화상 같은 상처를 수시로 드러내며 살았다. 함부로 내보이면 안 될 그것을 자랑처럼 까발렸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의지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여전히 그 방법밖에 몰라서, 앞으로 안 그럴 자신도 없다. 노마, 노마. 질긴 종이를 껌처럼 씹으며 나는 노마의 이름을 불렀다. J와 이별했고 그 때문에 종이를 먹는데도, 내 마음을 서성이다 끝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언제나 J가 아닌 노마였다.
* 같은 책, 136쪽. ** 같은 책,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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