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6화]
쌈
섹시하고 예쁘고 멍청한 금발 아가씨. 사람들은 마릴린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원하지 않았다. 오직 그것을 바랐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마릴린은 점차 그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를테면,《카라마조프의 형제》의 여주인공 그루센카 같은 역할.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비꼬고 비웃었다. 섹시한 금발 스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면서도 마릴린은 그것을 이용했다. 이를테면, 유력 인사가 모이는 칵테일파티 같은 경우. 성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마릴린, 목까지 단추를 채운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오는 바지를 입고 노출을 최대한 꺼리는 마릴린, 위트 있고 지적인 답변을 곧잘 하는 마릴린, 앉을 수도 없을 만큼 몸에 붙는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타나 섹시한 포즈로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추파를 던지는 마릴린은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그중 어떤 것은 연기고, 어떤 것은 본래의 마릴린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모두 마릴린의 알맹이며, 마릴린의 껍데기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순되는 말과 행동, 모두 나다. 누군가는 나를 얌전한 아이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나를 되바라진 아이로 기억한다면, 나는 얌전하고 되바라진 아이다.
“그는 그 일에 대해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어요. 그는 그녀가 자신의 가장 나쁜 점을 끌어낸다고 했죠. 보통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가 말하길, 그녀는 버릇이 없고 아주 자기중심적인 데다가 그게 그를 미치게 만든다고 했어요. 그는 그녀를 애지중지하는 것에 질렸다고, 그녀에게 지친다고 말했죠. ‘오~ 너무 슬픈 일이야.’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랬어요. 내가 말했죠. ‘조, 너희 둘이 이혼해야 될지도 몰라.’ 그는 날 미친놈 보듯이 하더군요. ‘난 그녀를 보내지 않을 거야. 그녀를 보낸다면 내겐 그게 바로 지옥이야.” *
마릴린의 두 번째 남편, 조 디마지오에 대한 문장이다. 그 문장을 살짝 데쳐서 된장을 묻혀 쌈 싸먹었다.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에게 일과 사랑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마릴린에게는 일이 곧 사랑이었다. 마릴린이 원한 것은 단 한 사람만의 사랑이 아니다. 모두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 단 한 사람이, 언제 자기를 버릴지 모르니까. 마릴린은 사랑받기 위해 연기했다. 연인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그러므로 일을 포기하라는 말은 사랑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두 사람은 결국 이혼하지만, 조는 마릴린이 죽을 때까지 그녀를 보살핀다. 어쩌면, 끝까지 보살핀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랑이 다해서 이혼했다기보다 너무 사랑해서 이혼했다고 볼 수 있는데, 너무 사랑했다는 말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너무 가지려고 했다. 독점하려고 했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차지하고 구속하는 것 역시 사랑이다. 이것은 사랑이고, 저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얌전한 나도 나고, 되바라진 나도 나인 것처럼. 아름다운 마릴린이 조의 나쁜 점을 끌어냈듯 아름다운 노마는 내 안의 괴물을 끌어냈다. 나도 내가 그런 아이인 줄 몰랐는데, 몰랐을 뿐, 그것 또한 분명 나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근본에 가까운 나였다.
* 같은 책,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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