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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뒤 수행원과 취재진에 둘러싸여 법정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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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짓밟고 ‘사람의 지배’ 불러온 ‘원세훈 판결’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미뤄둔 채 ‘가사 상태’에 빠져
겉으론 “민생, 민생” 떠들며 ‘서민 증세’로 민생 죽여
군대에 간 젊은이들은 죽어서 나오거가 폭력에 찌들어
대통령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74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을 보고 한 판사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죽었다’고 개탄했습니다. 사법부의 허리라 할 현직 부장판사가 그렇게 한탄했으니, 그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 이범균 부장판사의 판결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원칙인 ‘법의 지배’를 짓밟고, 봉건왕조나 절대왕정에서 이루어지던 ‘사람의 지배’로 퇴행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입만 열면 ‘법치’를 외쳤습니다. 한 부장판사가 당신을 ‘법치를 죽이는 장본인’으로 찍었지만, 당신은 여전히 ‘법치’를 입에 달고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법치의 죽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각이나 해보시기 바랍니다.
법치주의의 붕괴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선 사이비 법치주의입니다. 권력자가 입법부를 무력화시키거나 예속시킨 뒤 멋대로 법을 만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통제하는 경우입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그런 경우이고, 우리나라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체제가 그랬습니다. 박정희 체제는 아예 긴급조치라는 ‘변태적 법체계’를 만들어 대통령 1인 지배를 고착시키려 했습니다. 전두환 체제는 입법회의라는 임의기관을 만들어 법을 멋대로 생산했습니다. 모두 법치의 탈을 쓰고자 했던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의 비극을 겪은 뒤 실질적인 ‘법치’를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며, 모든 법률은 헌법의 최고 법가치를 실현할 때에만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정착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잔꾀 많은 권력자들은 잇따른 사이비 법치주의의 비극을 겪고 나서도 실질적 법치주의를 질식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헌법적 가치를 담고 있는 법률이라도,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자들, 법을 집행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 정신과 가치를 훼손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대로 온전한 법은 장신구로 만들어버리고, ‘사람의 지배’를 관철하려는 것이니 그 교활함은 이전의 독재자보다 더 간악합니다. 이런 ‘사람의 지배’는 검찰을 권력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시작해, 사법부가 권력 앞에서 알아서 기는 것으로 완성되곤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검찰을 사냥개처럼 부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법치주의를 반쯤 죽여 버렸죠. 뒤를 이은 이 정부는 사찰과 공작을 통해 검찰총장을 벌거벗겨 내쫓아 검찰을 확실한 ‘권력의 개, 혹은 몽둥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찰과 공작이라는 그 ‘보이지 않는’ 채찍과 입신영달이라는 당근으로 사법부를 납죽 기게 만들었습니다. 실질적 법치주의의 확실한 죽음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를 확인해주기라도 하듯 대법원은 불과 3시간 만에 김동진 부장판사의 글을 법원 통신망에서 직권 삭제하고, 그가 ‘법관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을 위배’한 것으로 보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고 합니다.
지난달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에 설 수 없었다’고 말해 감동과 함께 반성의 기회를 준 바 있습니다. 대법원의 이번 조처는 그런 교황을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종교재판에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치권력의 통제를 넘어서 법원이 알아서 검열하고 통제하는 것이니 법치주의의 실질적 사망 선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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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가운데)이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을 피해 법정을 나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과 이를 막는 수행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자 비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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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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