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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7월18일 청와대에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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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비서’는 맞지만 ‘절의의 신료’는 아닌 이병기 실장
대통령이 안 변하는데 ‘문고리 3인방’을 제어할 수 있겠나
또다시 ‘혼군의 실패’ 못 막은 ‘불행한 비서’ 경력 추가될 것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97
아무리 뜯어봐도 이번 인사 역시 엉망입니다. 공연한 트집이 아닙니다. 며칠 동안 여당에서 나온 반응만 소개하겠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7개월밖에 안 된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7개월 전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에게 신임장을 주며 한 말을 생각하면 한심합니다. “약도 먹다 끊으면 내성만 키워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듯….” 그때 왜 이병기 주일대사를 국정원장에 앉혔는지, 적폐의 내성만 키운 꼴이었습니다. 국가 정보기구의 수장을 청와대 비서실에 앉힌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을 청와대 법률특보로 임명한 게 고작입니다. 그는 7대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이후락 전 비서실장을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해 선거를 총괄하도록 하기도 했지만, 현직 중정부장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나경원 의원은 오늘 정무특보단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무특보단은 매끄럽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은 인사….” 청와대의 정무 기능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지적이 있어 정무특보단을 신설했습니다. 그러나 현역 의원 3명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한 것도 이상하지만, 그들 면면이 정무적 기능과 거리가 먼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윤상현, 김재원 의원 등은 그동안 대통령의 나팔수 혹은 저격수로 꼽히던 인물입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소통에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유승민 원내대표도 비슷한 평가를 했던 터였습니다. “특보단을 두려면 야당이나 당내에 소외된 그룹하고 잘 대화가 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는 얘기를 드렸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장관 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선임된 장관 후보자 3명을 포함하면 국무위원 18명 가운데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를 포함해 6명이 현역 지역구 의원입니다. 모두 열성적인 ‘친박’ 의원들입니다. 그래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렇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6명이나 발탁해준 데 대해 감사드리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지역구 의원 중에선 그만 데려갔으면 한다.’
내년이면 총선입니다. 그 전에 이들은 당으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1개월밖에 장관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1년도 채 못 할 게 뻔한 이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겠습니까. 침체된 경기와 엎어진 민생을 되살리는 데 눈치 보지 않고 앞장서겠습니까. 특보단이 대통령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를 막아내는 ‘방탄 특보’라면, 내각은 청와대의 지시를 진돗개처럼 집행하는 ‘친위 내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김 대표의 이런 충고는 총평이자 결론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장관이라는 자리는 한 정치인의 경력 관리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겠다. 개혁을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건 내각이나 청와대로 간 이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인사는 뭐니 뭐니 해도 국정원장 교체입니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대통령선거 공작 및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작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을 이명박 정권 이전 수준으로 돌릴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혔습니다. 그는 취임식 때 직원들에게 ‘머릿속에서 정치 개입이란 말을 아예 지워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 그를 바꿨으니, 세간에서 말하듯 비서실장 돌려막기가 아니라 국정원장 경질에 방점이 찍힌 것만 같습니다.
그의 후임으로 지명된 이병호 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차장을 보면 그 성격은 좀 더 분명해집니다. 그는 1970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듬해 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보부는 이후락 부장의 지휘 아래 선거 공작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김대중 후보는 이후락 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게 아니라 이 부장, 당신에게 졌다.’ 그렇게 7대 대통령선거는 관권부정선거로 치러졌습니다.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는 그런 판에서 중정 통과의례를 치렀습니다.
그런 그가 <월간조선> 2013년 2월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국정원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원에 대해서는 더 심하게 말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정치 공작을 말소하려고 노력했던 두 정부의 국정원을 두고 그랬으니, 그가 생각하는 국정원의 상은 쉽게 그려집니다. 이명박 정부까지 포함해 그는 15년을 ‘국정원 상실의 시대’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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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2014년 7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조윤선 정무수석과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에 잠겨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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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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