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소설 <3화>
그가 데번으로 돌아가고 몇 달 후에 그의 새아버지인 빅토르가 귀족 집안 출신이 아니라 구두공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사벨라는 몹시 상심해서 아무도 집 안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았다. 한 달 후 이사벨라는 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왕인 움베르토 1세에게 공작 직위를 사서 빅토르에게 주었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공작부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 안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패리스는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퇴색되어 간다고 느꼈다. 그는 그것 때문에 두려워졌다. 이 년 후에 빅토르 레우브제뜨 공작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다. 이사벨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지만, 그는 어머니가 이번에도 장례식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데번의 저택을 베르사유 궁전 풍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예술가, 음악가, 학자, 귀족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이사벨라를 공작부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스물일곱 살 때 자신보다 세 살 어린 릴리 그레이엄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쪽은 오스트리아 귀족 출신으로 뉴욕 사교계에서 평판이 좋은 집안이었다. 릴리는 굉장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둥근 이마가 아름다웠고 쾌활했으며 패션센스가 있었다. 라틴어와 프랑스어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간단한 악기도 다룰 줄 알았다. 이사벨라는 릴리를 좋아했다. 물론 패리스도 릴리를 사랑했다. 결혼한 이듬해에 릴리는 바로 임신을 했지만 출산 도중 아이가 죽었다. 패리스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런던에 거대한 저택을 마련해서 자신이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특히 그는 방 하나를 온갖 보석과 옷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릴리는 무척 기뻐했고 그를 멋쟁이 건축가라고 불렀다. 그는 그게 마음에 들어서 런던 저택 현관문에 ‘건축가 싱어’라는 명패를 붙여놓았다. 나중에, 그러니까 십몇 년 후에 릴리는 그 명패를 떼어내서 저택의 정원에 던져버렸다. 그건 한동안 거기에 그런 식으로 방치되었다. 아무도 그걸 주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산을 하고 일 년 후에 그녀는 두 번째 임신을 했다. 이번에 그는 여러 가지를 조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필요할 때 다른 여자들을 만나서 자신의 욕구를 풀었다. 욕구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열망도 없었다. 그는 임신이 되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다. 릴리는 무사히 출산을 했다. 예쁜 딸아이였다. 패리스는 아이의 손가락을 처음 봤을 때를 잊지 못했다. 이사벨라는 손녀에게 고귀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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