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소설 <4화>
나폴리에서 휴가를 끝내고 그는 임신 중인 릴리와 프란체스카만 런던으로 돌려보냈고, 자신은 밀라노로 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밀라노에 새로운 항구를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거의 반쯤은 진행된 일이었다. 나폴리에서 밀라노로 간 그는 돌연 그 사업을 그만 접기로 했다. 진절머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손해가 막심했지만 상관없었다. 그에게 돈은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는 가족이 있는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머니가 사는 데번에 들렀다. 이사벨라는 하인 수십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오십 대였지만 사람들은 이사벨라를 훨씬 더 어리게 보았다. 그녀의 진짜 나이를 들으면 사람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패리스가 도착했을 때 이사벨라는 바스톨디를 비롯한 조각가와 화가를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어머니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사벨라는 손님들을 계속 붙잡아두었다. 그는 식탁에 남아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결국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어머니의 손님들이 후식을 먹고 떠드는 동안뿐이었다. 어머니의 방에 단둘이 남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 이사벨라가 갑자기 바스톨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이가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이 나였다고 털어놓더구나.” 그는 어머니가 바스톨디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음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볼에 다정하게 키스하고 데번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그는 런던으로 가지 않고 나폴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술집에서 엔젤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는 임신이 되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다. 석 달 후에 릴리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그는 거기에 머물렀다. 릴리는 아들을 낳았다. 릴리는 그 이듬해부터 약 칠 년 동안 세 번의 임신을 더 했다. 더 이상 사산은 없었다. 릴리는 다섯 번째 출산을 했을 때, 그러니까 넷째 아이를 낳은 후 패리스에게 더 이상의 임신은 싫다고 말했다. 패리스는 왜냐고 물었다. “그냥…… 더 이상은 싫어요. 모르겠어요. 모든 게 다 지겨워요. 내가 임신해 있는 동안 당신은 여기저기를 떠돌죠. 그것도 싫어요.” 릴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릴리가 임신해 있는 동안 외국을 떠돌면서 여자들을 만났다. 프랑스 여자, 러시아 여자, 네덜란드 여자……. 그는 그 여자들이 이국의 언어로 떠드는 게 좋았다. 그는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떤 여자들은 유달리 슬퍼 보이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걸 기억하고 싶었다. 어떤 순간에, 그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 같은, 어쩌면 릴리와 예쁜 아이들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그런 여자도 만났다. 그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는 그 모든 아름다운 여성들을, 그녀들과 보냈던 시간을, 마치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던 그녀들의 목소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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