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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2 10:22 수정 : 2013.05.02 10:22

손보미 소설 <9화>



파리로 돌아온 그는 이사도라가 그 집에서 남자 예술가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사도라를 위해 많은 돈을 들여 파리에 무용학교를 세워주었다. 어느 날 밤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침실에서 남자와 있는 이사도라를 발견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이사도라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야 비로소 그는 그녀를 떠났다. 그리고 오 년 후에 패리스는 릴리와도 정식으로 이혼했다. 릴리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다 잃어버린 후의 일이었다.

이사도라를 떠난 후 그는 애디슨 미즈너라는 건축가와 함께 미국 남동쪽에 있는 거대한 늪지대를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그곳에 사교클럽을 세웠고 몇 개의 건물도 세웠으며 광장도 두 개―그 광장에는 그들의 이름을 따 각각 미즈너 광장, 패리지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만들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훗날 플로리다 팜비치의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착실하게 플로리다라는 도시를 만들어냈다. 물론 가끔 불법적인 일에도 손을 댔고,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프란체스카가 결혼을 했다. 몇 년 후에는 둘째 아들이 결혼을 했다. 그는 그 당시 감옥에서 나와 플로리다 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사벨라가 그에게 전화를 해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도대체 아버지가 참석하지 않는 결혼식이 말이 되는 거니?” 그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젊었을 때와 변함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했다. 몇 년 후에 릴리가 결핵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릴리의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이사벨라는 참석하지 않았다. 패리스는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자신의 손자들에게 둘러싸여 어색하게 서 있었다. 임신 중인 프란체스카가 그를 꼭 껴안아주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그는 그날 밤에 오랜만에 런던 저택에 머물렀다. 그는 온갖 사진과 그림으로 가득 차 있던 응접실에 들어가 보았다. 여전히 많은 수의 사진과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는 그중 어떤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림 속, 탁한 군청색 하늘에 떠 있는 노란달은 마치 조각난 것처럼 보였다. 달 아래에는 빨간 지붕을 한 커다란 저택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두 여자가 그 저택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머리를 틀어 올린 늙은 여자가 그 집을 나와서 걸어가고 있었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여자들은 너무 작게 그려져 있어서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녀들이 젊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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