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원 체험르포
(하) 값싼 노동, 싸구려 복지
경기도 한 중소도시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김 선생’(가명)을 처음 만난 건 점심 식사 이후 건물 구석에 자리잡은 소파에서였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오전에 기저귀·식사 케어와 청소를 마친 뒤 쉬고 있는 기자를 발견한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 신기한 듯 먼저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이렇게 시작한 대화는 요양보호사들이 처한 현실로 옮아갔다.
근무한 지 6개월 정도 된 김 선생은 아침 7시에 나와 오후 5시께 퇴근한다. 50대인 그는 사적인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실직한 뒤 오셨느냐”는 질문에 “그렇죠, 뭐”라고 답변했다. 급여는 하루 8시간씩 한 주에 닷새 일하면 130만원가량을 받는다. 4대 보험료를 떼면 더 줄어든다. 휴일근무가 잦다는 말에 “휴일수당은 잘 나오느냐”고 묻자 김 선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게 좀 이상해요. 제대로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선생이 처음부터 ‘요양보호’ 일에 익숙했던 건 아니다. “처음엔 고생했죠, 할머니들 기저귀 갈면서…. 아무리 할머니라도 여자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냄새도 심했고. 남자인 내가 할머니 목욕시키는 것도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거 적응 못하면 이 일 못하죠.”
다른 요양보호사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른 선생님들도 처음에 기저귀 케어 과정에서 많이들 고생하고 얼마 안 가 그만두는 경우도 있어요.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죠. 아무나 못할 일이에요. 그런데 선생님도 이거 하시려고? 젊은 분이 기특하네.” 김 선생이 슬쩍 웃었다.
힘든 노동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자부심이나 성취감은 없을까? 김 선생의 말은 그렇지 않았다. “뭐, 말이 요양이지 사실상 허드렛일이에요. 청소하고 별 잡일을 다 한다니깐.”
실제 옆에서 지켜본 요양보호사들은 요양업무 이외에 청소 같은 가욋일도 했다. 기자가 그들의 지시를 받으며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요양원의 방마다 돌아다니며 진공청소기와 물걸레로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11일에는 목욕 케어가 끝난 뒤 목욕탕 바닥 타일 사이의 때를 벗기는 일도 했다. 3평 정도 크기의 목욕탕 바닥을 주방세제와 철수세미로 닦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이런 일들을 평소에는 요양보호사들이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낮에는 급여 제공, 배설 관찰, 체위 변경 등에 관한 기록지 작성 같은 행정업무도 해야 한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얘기가 무르익자 김 선생은 기자에게 “커피나 한잔 하자”며 비(B)동 복도 끝으로 향했다. 걷는 도중 두 손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김 선생이 말했다. “인권침해 우려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우리도 사람인데, 치매 노인이 때리고 꼬집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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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al-sook is escorted back to her room after a bath by a nurse. Lee left the nursing home after just two days, the day after this photo was t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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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사 한사람이 열명 이상 돌봐”…월급 100만원 미만 69%
김 선생과 함께 복도 코너를 도는데, 너비 1.5m 정도의 1평도 안 돼 보이는 작은 방이 나타났다. 거기엔 여성 요양보호사인 ‘한 선생’(가명)이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었다. 바닥엔 대중목욕탕에서 사용하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었다.
■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휴식 김 선생이 커피를 타 주는데 에이(A)동 ‘박 팀장’(가명)과 비(B)동 ‘서 팀장’(가명)이 들어왔다. “난 바닥이 편해.” 박 팀장이 의자 없이 맨바닥에 엉덩이를 댔다. “휴게실이 왜 이렇게 작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선생이 익숙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기가 편해요”라며 웃었다. 좁은 방에서 서로의 어깨가 닿았다.
한 선생이 박 팀장의 슬리퍼로 눈을 돌렸다. “좋아 보이네요. 비싼 거 같은데. 내 거는 이마트에서 7000원 주고 산 건데….” 한 선생이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박 팀장이 “신발이 좋아야 다리가 편해. 나 이거 백화점에서 3개월 할부로 산 거야, 3개월”이라고 말했다. 하루 종일 서 있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양보호사들은 쉬는 시간에도 어떤 신발이 편한지가 대화의 주제다.
쉴틈도 쉴곳도 없는 요양보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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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연차휴가’ 문제로 이어졌다. 한 선생이 “난 연차가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말하자, 서 팀장이 관련 법을 읊어가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20여분간의 대화에서 요양보호사들은 주로 자신들이 처한 노동환경에 대한 간접적 불만을 토로했다. 한 선생은 어깨가 아픈지 자꾸 주물렀다.
2010년 전국공공서비스노조가 요양보호사 2694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휴게시간이 없다’는 응답이 무려 81.8%에 이르렀다. 열에 여덟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한다는 얘기다. 2010년 요양보호사협회 실태 보고서를 보면, 요양보호사의 식사 장소가 병실인 경우가 약 54%, 식사 장소가 아예 없는 경우도 약 33%에 달했다. 쉴 틈도, 쉴 곳도 없는 것이다.
에이동 비품실 문에는 요양보호사 근무표가 붙어 있다. 5명으로 구성된 주간조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형태를 알 수 있다. 5일을 연속으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격일로 근무한다. 근무시간은 제각각이다. 매일 나오는 요양보호사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한 격일 근무자는 오전 7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12시간 근무한다.
각 동에는 원래 5명의 주간근무자가 배정되지만 대개는 3명이 일했다. 한 명이 휴가를 가면 2명이 근무하는 구조다. 4월 근무표를 보면 에이동에서 한달 동안 2명이 일하는 날이 9일이다. 에이동에 29명의 노인이 있으니 한 명당 대략 15명의 노인을 돌보는 셈이다. 노인만 돌보는 게 아니라 청소나 행정업무 등도 해야 한다. 오후 물리치료실이나 병실에서는 각종 서류를 작성하는 요양보호사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 시간 동안 ‘케어’는 당연히 실종된다.
직접 목격한 요양보호사들의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대로 된 복지 서비스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결국 그 피해는 노인들에게 간다. 서울 지역의 한 요양보호사는 “보통 한 사람이 10명 이상 노인을 돌본다. 이런 상황에서 ‘말벗’ 같은 질 높은 케어가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입소자 10명 이상 시설의 경우 노인 2.5명당 한 명의 요양보호사를 배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 명이 2.5명을 돌본다는 소리가 아니다. 요양시설에선 이 수에 맞춰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면 되고, 요양보호사들은 주·야간에 각기 다른 근무시간으로 쪼개져 근무한다. 결국 요양보호사 한 명이 2.5명을 보살피는 상황은 불가능에 가깝다.
11일 오전, 한 선생이 비동에서 혼자 병실을 돌며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두 명이서 한 명의 기저귀를 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한 선생은 혼자서도 척척 해냈다. “도와주겠다”고 하자 한 선생은 반색했다. “사람 더 고용하면 일이 좀 낫지 않아요”라고 묻자 한 선생은 “그러면 좋지요. 근데 그렇게 하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 적은 급여, 높은 노동강도 요양원의 주된 수익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입소한 노인 수만큼 주는 보험급여다. 따라서 요양원은 노인 수를 늘리거나 아니면 비용을 줄여야 수익이 남는다. 공단 관계자는 “일부 요양시설에서 적자를 피하려고 인건비나 각종 재활 프로그램 비용 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입소 노인 수를 늘리지 못하니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쉬운 경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자운영 피하려 인건비등 줄여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 요양보호사들과 그들의 돌봄을 받는 노인들이다. 요양보호사의 급여 책정은 전적으로 시설장의 권한이다. 정부가 내놓은 임금 가이드라인은 없다. 급여는 보통 시간당 7000원꼴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4대 보험료 등을 빼면 최저생계비 수준(2013년 기준 시간당 4860원)으로 내려간다고 요양보호사협회의 2011년 실태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1년 2694명의 요양보호사를 면접조사해 펴낸 운영실태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한달 급여가 100만원 미만인 경우가 68.8%에 달했다. 이직도 잦아, 2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는 24.6%에 그쳤다. 2010년 한국여성노동조합의 ‘노인요양보호사 노동권 실태 조사’를 보면, 요양보호사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약 53시간, 요양보호사 1명이 실제 돌보는 노인 수는 주간 평균 9.7명, 야간엔 16.5명으로 나타났다. 급여는 적고 고용은 불안한데다, 노동강도마저 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래프)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나마 지난 3월부터 요양보호사에 대한 처우개선비가 10만원씩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되고 있다.
인건비 외에도 요양원의 비용 줄이기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기자가 일한 요양원의 목욕탕 문 앞에 놓인 미끄럼 방지용 발판에는 무늬 사이로 먼지가 수시로 끼었다. “먼지 안 끼는 걸로 새로 하나 사야 할 거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한 직원이 “이것도 겨우겨우 말해서 사준 건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노인들이 목욕을 마친 뒤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복도를 지나 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목욕 가운만 지급되면 해결될 일이다. 목욕수건 한장, 발톱깎이 하나로 같은 동 노인들이 돌려 사용하는 것도 결국 비용 줄이기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만 하는 기저귀 케어도 그렇다. 기저귀 값은 절약되지만, 정해진 시간까지 노인들은 불편을 참아야 한다. 한번은 한 치매 노인이 화장실 안에서 배변을 보고 “휴지 줘”라고 고함을 쳤다. 그때 기자에게 휴지를 건넨 요양보호사의 말이 “조금씩 줘”였다.
결국 비용 지원만으로 민간시설에 노인복지를 떠넘기는 국가, 충분한 인력과 서비스를 갖추지 못한 요양시설,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 등 3박자 상황이 입소 노인들의 존엄한 황혼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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