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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8 10:10 수정 : 2013.05.15 15:18

황현진 소설 <3화>



엎드려!

갑자기 키스가 낮은 목소리로 외치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러곤 재빨리 어깨에 걸려 있던 총을 풀었다. 우리는 바지를 제대로 추슬러 입지도 못하고 키스를 따라 거총자세를 취했다. 나는 뜻대로 멈추지 않는 오줌발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모래사장에 엎드려 누웠다. 지린내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모깃소리를 내며 서로에게 물었다.

뭐야? 비씨야?

다들 키스의 눈이 향한 곳을 노려보았다. 둥글게 휘어진 만의 끝에 사람의 형체가 서 있었다. 여자였다. 하얀 아오자이의 끝자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귀신은 아니겠지?

비씨보단 귀신이 낫지.

갈기자.

너무 멀어.

우리를 봤을까?

보고도 남지.

왜 가만히 있지?

비씨들은 원래 그래.

계속 가만히 있을 거야?

예쁠까?

데리고 가는 건 어때?

가는 길에 버리자.

키스가 먼저 엎드려 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뒤따라 기어갔다. 나는 성기에 묻은 모래를 손으로 대충 털어내고 열의 뒤에 붙었다. 그때였다. 키스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더니 자못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혼자 다녀올게.

보기에도 꽤 먼 거리였다. 엄호가 필요했다. 흰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는 단순한 유인책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열에 비켜서서 뒤따라오던 소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대장은 여자가 있는 쪽을 유심히 살펴보는 체했다. 엄폐물로 삼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모래밭은 휑했다. 그게 오히려 소대장을 안심시킨 눈치였다. 그는 열대우림의 빽빽한 풍경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게다가 모래밭 아래 땅굴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스가 짓궂은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긋했다.

우리는 소대장의 손짓을 따라 지프 쪽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사이 키스는 어둠에 묻혀 찾을 수 없었다. 아오자이의 치맛자락도 멀어졌다. 우리는 지프의 바퀴를 발판 삼아 짐칸에 차례대로 올랐다. 몇몇은 남아 차를 밀었다. 시동 거는 소리가 사격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되도록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에게로 다가가야만 했다.

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짐칸에 오르자마자 모두 바지의 지퍼를 서둘러 올렸다. 고추를 꺼내놓고 죽을 수야 없지. 소대장이 웃자고 할 말인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소대장은 금방 정색했다. 키스가 말했더라면 다들 웃었을 것이다. 소대장은 우리가 악명 높은 단명의 길 위에 놓여 있음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1번 국도의 가장 위험한 길 안쪽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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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황현진의 <키스와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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