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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9 10:01 수정 : 2013.05.15 15:18

황현진 소설 <4화>



키스는 우리 중대의 뛰어난 첨병이었다. 그는 바람의 방향을 알아내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지뢰나 부비트랩을 발견할 때면 그는 쪽쪽 소리 내어 엄지를 빨았다. 혼자 능글맞게 웃으면서, 우리가 킬킬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키스는 축축해진 엄지를 허공에 치켜들고 바람의 결을 느꼈다. 키스 덕분에 우리는 항상 바람의 뒤쪽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와 미세한 파편을 항상 비켜설 수 있었다. 우리는 키스의 능력을 높이 샀다. 그의 철없는 돌출행동을 눈감아주는 것은 키스가 어려서라기보다 부대 내에서 가장 훌륭한 첨병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몇 안 되는 첨병조 중에서 맨 앞에 서는 병사였다. 하지만 키스가 부러 과장된 몸짓을 해가며 엄지를 빠는 모습은 늘 우스꽝스러웠다. 그 바람에 그는 자연스럽게 키스라고 불렸다. 자신의 엄지에 키스하는 첨병에 대한 이야기는 아군들의 우스갯소리로 널리 퍼졌다. 장교들은 일부러 그를 불러다가 철 지난 <플레이보이>를 건네주곤 했다. 키스, 이걸 가져다가 더 열심히 키스 연습에 매진하게. 상사의 어쭙잖은 농담에도 그는 언제나 손으로 키스를 날려주었다.

우리는 어서 총성이 울리기를 은연중에 기대하면서 주변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거의 목표지점에 다다랐을 즈음, 지프를 향해 뛰어오는 군화 소리가 들렸다. 착검! 소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군화 뒤에 덧대었던 검을 허리춤에 끼웠다. 거총! 소대장의 명령이 곧바로 이어졌다. 우리는 빠른 손놀림으로 총을 장전했다. 우리의 군장엔 각각 삼백 개의 실탄이 들어 있었다. 총알은 늘 넉넉했다. 우리는 뜨거워진 손으로 총의 잠금쇠를 풀었다. 여차하면 난사할 작정이었다. 발소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지프가 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고요했다. 우리는 느닷없는 열기를 느꼈다. 누구라도 이곳에 오래 있다 보면 감각이 이상해지기 마련이었다.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올 때면 밤낮 상관없이 몸이 뜨거워졌다. 총소리가 나면 은단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 반대일 때도 있었다. 느닷없이 은단 향이 난다 싶으면 총소리가 났다. 한밤에 포격 소리를 들으면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물론 놀라울 정도로 무뎌지는 감각도 분명 있었다.

우리는 정글의 커다란 도마뱀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 뒤에 비죽이 튀어나온 삿갓을 보면 반사적으로 총을 쏘았다. 정글도의 날카로운 칼날에 지레 겁먹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전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말에도 절망하지 않았다. 우리의 달력에는 고국으로 돌아갈 날짜가 분명하게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복무기간이 일 년을 넘기지 않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조롱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 돈 욕심이 났다. 복무연장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차곡차곡 돈이 모이는 월급통장을 생각하면 돌아갈 일보다 남아 있는 일이 더 우선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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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황현진의 <키스와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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