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7화>
키스는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길게 뻗어 있었다. 우리는 죽은 뱀을 보느라 제 엄지를 요란하게 빨아 젖히는 키스를 지켜보지 못했다. 우우, 야유하며 놀리지도 못했다. 우리는 키스의 주변에서 붉게 젖은 흙을 보다가 불현 듯 그의 엄지를 눈으로 찾았다. 키스의 엄지에 흙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소대장이 물었다.
죽었어, 살았어?
위생병이 키스를 뒤집어 눕혔다. 키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폭발의 진동이 아직도 키스의 몸 안을 헤집고 다니는 듯했다. 우리는 키스의 이름을 불렀다. 키스, 키스.
숨은 아직 붙어 있습니다.
위생병의 대답에 소대장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살겠어?
위생병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을 키스 역시 들었는지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벌게진 눈에 가득 차올랐던 눈물이 키스의 귀 뒤로 흘러내렸다. 우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고개를 외로 돌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2소대와 4소대 대원들이 우리를 스쳐 마을 안쪽으로 먼저 진입했다. 우리는 키스를 에워쌌다. 곧이어 들것이 실려 왔다. 잘못 보았을까. 키스는 웃고 있었다.
키스는 들것에 실려 안전 지역을 떠났다. 소대장이 넋 빠진 얼굴로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정수리에서 뜨거운 기운이 뻗치는 것을 알았다. 콧속이 매울 정도로 은단 냄새가 강렬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탄창을 손등으로 툭툭 치며 마을 안쪽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이미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폭발 소리에 놀란 주민들은 몸을 숨긴 채 밖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몇몇 개들이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슬금슬금 우리를 피했다. 우리는 개들을 먼저 쏘아 죽였다. 적군의 영토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쏘아 죽이는 게 평정이었다. 게다가 이 마을은 더 이상 안전 구역이 아니었다. 자유살상 구역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가 방 안에 혼자 앉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미군 군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미군 소속이오.
그 말이 자랑처럼 들렸다. 우리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을 갈겼다. 그는 숨통이 아주 끊어질 때까지 우리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눈알에 두어 번 총을 더 갈겼다. 옷장 안에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사탕을 건넸다. 아이가 울면서 사탕을 받았다.
먹어.
아이는 우리가 하라는 대로 순순히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콤하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이의 미간을 향해 총을 쏘았다. 아이는 옷장 밖으로 떨어졌다. 사탕이 방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우리는 군홧발로 사탕을 부서뜨렸다. 곧장 옆방으로 옮겨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젊은 여자가 바들바들 떨면서 우리를 맞았다.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볐다. 우리는 여자에게서 이불을 뺏었다. 여자를 잡아끌어 엎드리게 했다. 치마를 들쳐 총부리로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여자는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여자의 뒤에 총을 쏘았다. 여자는 방바닥에 얼굴을 박고 절을 하는 자세로 죽었다.
우리는 부엌으로 갔다. 짚단을 헤쳤다. 보통 그 아래 땅굴이 있었다.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짚단 아래 얇은 판자가 나타났다. 판자를 발로 밀어내자 굴의 입구가 보였다. 총부리를 먼저 밀어 넣고 당장 나오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머리카락이 허연 노인네가 비칠거리며 굴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의 등에 갓난아이가 업혀 있었다. 우리는 노인에게 다시 굴 안으로 들어가라고 시켰다. 노인네는 우리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는 총부리로 계속 굴 쪽을 가리켰다. 노인네가 흘러내리는 갓난아이를 앞으로 다시 안더니 좀 전보다 더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굴 안으로 기어들었다. 그는 굴 안에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눈이었다. 우리는 그를 향해 여러 발의 총을 쏘았다. 노인네는 두 팔을 버둥거렸다. 그러면 총알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의 손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그의 몸 구석구석을 총알이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판자로 굴을 덮고 짚단에 불을 붙였다. 불은 순식간에 붙었다. 우리는 뛰다시피 빠져나와 옆집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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