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8화>
옆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한 집 한 집 꼼꼼하게 평정했다. 불이 옮겨붙은 집은 평정이 끝났다는 표시였다. 몇 집 안 남았을 때, 우리는 그들의 귀를 자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귀를 잘라야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뒤늦게 그들의 귀를 자르기 시작했다. 죽이기 전에 자르기도 하고, 먼저 죽이고 난 뒤에 귀를 자르기도 했다. 어차피 반응은 비슷했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의 귀를 칼로 잘라낼 때에도 죽은 이의 몸은 퍼덕거렸다. 가끔 비명을 지르는 시체도 있었다. 우리는 커다란 주머니에 잘라낸 귀 한쪽을 한데 모았다. 부대 전체에 하사품이 전해질지도 몰랐다. 담배와 라디오. 쌀과 바나나. 시레이션과 위스키. 파인애플과 카메라.
우리는 한 집도 빠뜨리지 않았다. 일부러 군화로 바닥을 탕탕 치며 걸었다. 누군가 키스의 이름을 불렀다.
키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집을 향해 가면서 키스의 이름을 구령 삼아 외치며 걸었다.
키스. 키스. 키스.
마을의 맨 끝에 위치한 집엔 외양간이 딸려 있었다. 우리는 외양간으로 먼저 들어갔다. 물소 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물소 고기는 맛이 없었다. 이 맛없는 고기들아. 우리는 이죽거리며 천천히 총을 쏘았다. 이 집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빨리 끝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물소들이 길게 울었다. 쓰러진 물소들을 밟으며 우리는 외양간 바닥을 대검으로 쑤셨다. 땅굴은 없었다. 쓸데없이 칼만 버린 셈이었다. 물소 똥이 칼날에 덕지덕지 묻어났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집 뒤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달려갔다. 하얀 치맛자락이 보였다. 흰색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가 숲 속으로 전속력을 다해 뛰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금방 잡혔다. 우리는 여자를 바로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여자의 얼굴을 연거푸 주먹으로 때렸다. 여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우리는 여자를 마당 한가운데 세웠다. 하얀 아오자이의 소매는 풀물이 들어 파랬다. 치마 끝단은 흙물이 들어 누렜다. 가슴팍에는 핏물이 배였다. 터진 입술에선 계속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우리는 여자를 둘러쌌다. 총 대신 대검을 들고 서서 여자를 위협했다. 여자들은 총보다 칼을 더 무서워했다. 우리는 여자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여자는 하늘을 잠시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칼을 높이 치켜들자 여자는 옷을 벗었다. 아오자이는 단숨에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여자는 실크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기다란 머리카락이 앞쪽으로 흘러내리게 했다.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웃었다.
우리는 순서대로 여자 위에 올라탔다. 일이 끝날 때까지 여자는 침묵했다. 거세게 반항하지도 않았다. 여자의 실크 속옷은 칼날에 찢어져 마당 구석에 처박혔다. 우리가 여자를 다시 일으켜 세웠을 때,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여자를 죽일 일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여자를 세워놓고 그녀의 귀를 먼저 자르고 죽일지, 죽인 다음에 귀를 자를지 잠시 의논했다. 그것은 우리의 악랄한 장난이었다. 우리는 여자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고 어떤 식으로든 여자를 괴롭히고 싶었다.
나는 여자에게 바투 다가갔다. 그리고 키스가 그랬던 것처럼 엄지를 소리 내어 빨았다.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게 뭔 줄 알아?
여자는 자신의 손을 뒤로 숨겼다.
네가 지뢰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거야.
나는 칼을 높이 들었다. 여자가 질끈 눈을 감았다. 칼로 여자의 한쪽 가슴을 내리쳤다. 여자의 오른쪽 가슴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여자 역시 무너지듯 바닥 위로 쓰러졌다.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가슴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여자의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피가 콸콸 흘러넘쳤다. 나는 여자의 머리 너머로 칼을 내던지고 총을 뽑았다. 키스가 바닷가에서 살려줬던 여자가 이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시라도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살려두자.
왜?
키스를 천국에 가게 해야지.
나는 그 말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 말이 어떤 점에서 맞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는 키스가 싸구려 총알과 맞바꾼 천국행 티켓이었다. 설령 그녀가 바닷가에서 만난 여자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총을 내렸다. 여자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그녀의 시선은 나를 향해 붙박여 있었다. 나는 젖은 엄지를 허공에 세워 잠시 바람의 결을 느껴보았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만이 내 눈에 들어올 따름이었다. 우리는 여자를 내버려둔 채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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