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 대신 차이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8. 법제정 무산시킨 보수쪽 논리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서 정치적 의견에 대한 차별금지가 자칫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국가질서 문란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지난 3월 한국교회연합은 이런 내용의 성명을 냈다. 합리적 이유 없는 모든 차별을 방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던 때다. 일부 기독교단체와 교회들은 이 법안을 제출한 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의 법안 철회를 압박하려고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이들이 뿌린 문자메시지에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김일성·김정일을 찬양하는 교육과 영상과 각종 선동 등에 반대하면 2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치적 견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문제삼은 것이다.
|
일부 기독교계, 문자메시지 뿌려 고용, 교육, 재화·서비스 영역 한정
구체적 차별행위 있어야 피해 구제 “비판만으로 처벌 주장은 근거 없어”
전문가들 “황당하다” 고개 저어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별금지법의 취지는 차별이 금지된 구체적인 사유를 근거로 특정인을 우대하거나 배제하는 경우 피해를 막자는 것이므로 구체적인 차별 행위가 있을 때 차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종북 세력을 비판만 해도 처벌받는다’는 주장은 “황당한 주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배제 등 불리한 대우를 표현하거나 조장하는 행위’도 차별로 인정되나 기준은 까다롭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 수준에선 각종 차별이 드러난 광고 행위, 또는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혐오 발언 등이 결과적으로 정신적·신체적 괴롭힘에 해당할 때만 처벌할 수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별금지법의 주목적은 실체적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지 타인에 대한 모든 견해 표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표현들은 실체적 차별로 이어질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소수자에 대한 경멸적 언사들을 처벌할지 역사와 사회에 근거한 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종북 담론’에는 기독교계뿐 아니라 뉴라이트 세력도 가세했다. 선진화시민행동(상임대표 서경석)은 3월 성명에서 “(차별금지법이) 국가보안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반국가활동’을,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에 대한 차별’로 둔갑시켜 법의 심판을 교묘히 회피할 수 있게 할 개연성이 크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금세라도 국가보안법을 위협할 것처럼 여겨진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조혜인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국가보안법이 당장 무력화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론 전혀 없다. 다만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나아갈 방향이 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국보법 개정·폐지 논의에 단초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