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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각) 이라크 바빌주의 바빌론 유적지에서 팔라흐 압둘하디 박물관장이 이슈타르 대문의 벽돌에 사용된 아스팔트 성분을 가리키며 벽돌 재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은 이라크 전쟁 기간에 미군의 군사기지로 사용되는 바람에 유적의 추가 발굴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됐다. 바빌/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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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전쟁과 평화
르포 전쟁 10년후, 이라크를 가다
지난 7일(현지시각) 오전 8시30분 이라크 바그다드 무타나비(아랍을 대표하는 이라크 시인) 거리의 국립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2003년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도로가 아직 원상태로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격으로 반쯤 무너져내린 건물들과 테러 방지를 위해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의 중무장한 군인들까지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동안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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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5주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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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 희귀본 3000권 등이
소실되거나 약탈당했다 전쟁 뒤 복원작업은 계속되지만
예산도 전력도 턱없이 부족
10년 흘렀어도 끝이 안 보인다 이라크 국립도서관이 있는 바그다드의 무타나비 거리는 이라크의 지성을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 모인 출판사와 서점들은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기서 생산된 책들은 아랍은 물론 멀리 유럽과 아시아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사아드 이스칸다르 박사가 돌아왔을 때 거리에는 찢겨진 책장과 인쇄용지 더미가 나뒹굴고 있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상처였다. 그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것은 미군들의 태도였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 도서관 앞에 탱크와 장갑차를 배치해 경비에 나섰지만, 약탈꾼들이 도서관에 난입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1954년 ‘전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에 따르면, 무력충돌이 벌어졌을 때 당사자들은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미국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아서인지 약탈을 수수방관한 것이다. 이스칸다르 박사는 사서들과 함께 피해 상황을 파악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3000여권의 희귀본이 소실되거나 약탈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역사 관련 서적의 60%, 기타 자료의 25%가 훼손됐다. 남아 있는 책들도 상태가 엉망이었다. 특히 폭격으로 수도관이 파괴되는 바람에 서가에 보관된 많은 책들이 물에 젖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궁리 끝에 이스칸다르 박사는 냉장고를 찾아 나섰다. 물에 젖은 책들에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복원 작업은 전쟁이 끝난 뒤에나 생각해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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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군의 폭격으로 바그다드 시내의 수도관이 터지는 바람에 물에 젖어 훼손된 희귀본 고서가 이라크 국립도서관 유리관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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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드 이스칸다르 이라크 국립도서관장이 7일(현지시각) 훼손된 책을 복원하는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이스칸다르 박사는 “아이티(IT) 강국인 한국이 도서관 복원을 지원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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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상처, 국립도서관·국립박물관·바빌론 유적지 미군기지 세운다고 유적 훼손
박물관 유물은 1만5천점 도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는 바빌론 유적지와 이라크 국립박물관도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5일(현지시각) 찾은 바빌론 유적지는 현지인들만 눈에 띌 뿐 외국인 관광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팔라흐 압둘하디 박물관장은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최근 종파분쟁에 따른 테러 소식으로 미국과 유럽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미군은 2003년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90㎞ 떨어진 이곳에 군사기지 ‘알파’를 세웠다. 바벨탑과 공중정원으로 유명한 바빌론 유적지가 이라크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압둘하디 박물관장은 “사담 후세인 군대나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의 자랑인 바빌론 유적지를 차마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라크 전쟁 기간에 이곳에는 포탄은 물론 단 한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4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빌론 유적지는 심하게 훼손됐다. 미군이 이곳에 참호를 파고 헬기 이착륙장을 짓느라 유적지를 깎아내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압둘하디 관장은 “미군의 대형 중장비가 지나다닌 곳은 바빌론 제국의 유물이 매장된 곳인데, 땅이 마치 포장을 한 것처럼 평평하고 단단하게 다져지는 바람에 발굴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국립박물관은 2008년 “미군들이 바빌론 유적지의 상징인 이슈타르 대문의 용이 새겨진 벽돌을 빼내려는 바람에 벽의 일부가 훼손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현재 바빌론박물관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남긴 흔적을 지우느라 분주하다. 후세인은 1979년 집권하자마자 ‘바빌론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대대적인 유적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추진된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철저한 고증은 생략한 채 콘크리트만 잔뜩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는 바빌론 유적지를 내려다보는 명당에 지어진 후세인 궁전은 박물관으로 개조해 보존하기로 했다. 오욕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다. 나우팔 아부라기프 문화부 대변인은 “후세인 별장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지만,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때 역사학계가 가장 크게 걱정했던 이라크 국립박물관은 아직도 일반인들의 관람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전쟁통에 많은 유물들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유물들에 대한 기록도 대부분 사라져 분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미국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복원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30개 전시관 가운데 고작 5개만 개관 준비가 끝났다고 박물관 쪽은 밝혔다. 이라크 정부는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 전체 유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1만5000점이 약탈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 왕들의 명판에서부터 도자기, 테라코타에 이르기까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유물들이다. 미군은 국립박물관에 약탈꾼들이 들이닥칠 때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압둘하디 박물관장은 “미군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고대 문화유적을 소홀히 다룬 것은 역사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바빌/글·사진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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