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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6 21:01 수정 : 2013.05.17 10:17

창간기획 l 용산기지 유적의 재발견

현재 남아 있는 용산기지 내 일본군 병영시설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수립된 ‘영구병영 계획’에 따라 1906~1913년 8년에 걸쳐 축조됐다. 일본군은 러일전쟁 뒤 조선 및 중국 침략을 위해 보병부대를 강화하기 시작해 1920년께 안정적인 편제가 완성됐다. 용산기지에는 13사단, 6사단, 2사단, 8사단, 9사단 등 지역 사단이 교대로 주둔하다가 1915년 20사단이 상주체제로 편성돼 1942년 태평양전쟁에 출동하기까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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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용산시가도’(서울역사박물관 제공)를 보면 당시 용산 주둔 조선군 병영시설과 편제를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령부, 육군창고, 보병연대 병영이 용산역과 긴밀하게 조성된 점, 야포병영 서쪽에 인위적으로 일본 민간시설이 조성된 점 등으로 미루어 병영의 전방위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배재대 김종헌 교수·소명출판 박성모 대표 제공,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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