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5 19:11
수정 : 2013.07.15 21:10
화씨(和氏)라는 사람이 초산에서 보배 옥돌을 발견해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은 옥 담당 관리인 옥인(玉人)에게 감정시켰다. 옥인은 돌이라고 판정했다. 여왕은 화씨가 거짓말을 했다며 형벌로 그의 왼쪽 발목을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다시 옥돌을 바쳤다. 무왕도 옥인에게 감정을 시켰다. 옥인은 또 돌이라고 판정했다. 무왕도 화씨가 거짓말을 했다며 형벌로 그의 오른쪽 발목마저 잘라버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했다. 화씨는 옥돌을 껴안고 피눈물 흘리며 통곡했다. 왕이 물었다. “세상에 발목 잘리는 형벌을 받은 이는 수없이 많은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는가.” 화씨가 말했다. “발목 형벌 때문에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판정하고, 정직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게 비통한 것입니다.” 문왕은 옥인에게 이 옥돌을 다듬으라고 하여 보옥을 얻었다. 이 옥은 ‘화씨의 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핵심 메시지는 가려져 있다. 한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개혁 대상이 개혁안을 심사해서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왕과 무왕은 옥인에게 옥돌 감정을 맡겼다. 자신들이 생산하는 옥보다 월등한 옥돌이 왔는데, 기득권자들이 이걸 제대로 평가할 리 없다. 그래서 화씨는 두 발목을 잃었다. 문왕은 옥인에게 “감정하라”(相之)고 하지 않고 “옥돌을 다듬으라”(使玉人理其璞)고 지시해 보옥을 얻었다. 개혁 대상에게 개혁안의 심사를 맡기지 않고 실행만 지시한 것이다. 한비자는 개혁파의 개혁안을 개혁 대상인 실권자들에게 심사하게 한다면 개혁파는 “형리 아니면 자객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개혁파가 도륙당하지 않은 것은, 다만 그가 제왕의 보옥과도 같은 개혁안을 아직 바치지 않았기 때문일 뿐”(有道者之不僇也, 特帝王之璞未獻耳.)이라고 울부짖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여론 조작, 국가 기밀 불법 공개 등 나라의 기강을 뒤흔든 국정원에 대해 ‘셀프 개혁’을 지시했다. 개혁 대상에게 개혁을 주도하라는 건, 돌보고 자신을 깎아내어 옥을 드러낼 계획을 세우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이미 이천몇백 년 전에 실패로 판명난 길을 가고 있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