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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02 19:11 수정 : 2013.05.16 16:23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미국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면에서 한국의 직장문화와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로 나이에 비교적 연연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직장문화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연공서열이나 장유유서의 개념이 희박한 미국 회사에서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상관이거나,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로 두고 일하는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후배가 자기보다 먼저 승진하거나, 나이는 들어 가는데 일정 직급 이상 승진하지 못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직을 떠나야 하는 한국 문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따로 존대어가 없는 영어를 쓴다는 것이 크다. 상하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호칭이나 직함을 쓰지 않고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는 문화도 크게 작용한다. 회사 사장에게 “정욱” 하고 이름만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습관 외에 제도적인 뒷받침도 크다. 직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배제하기 위해서 많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3년 전 라이코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사장도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80여명 되는 직원들을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인사담당 매니저에게 직원들의 신상파일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사장도 직원들의 나이·인종·결혼 여부 등의 인적사항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인사 업무상 필요한 담당 직원 이외에는 누구도 직원들 개개인의 인적사항을 알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내가 최종면접을 하겠다고 하니 그는 “면접 때 물어봐서는 안 될 것”이 적힌 메모를 한 장 보여주었다. 그 메모에는 지원자의 나이, 종교 등은 물론이고 결혼 여부, 자녀가 몇 명인지, 아이를 가질 예정인지, 시민권은 갖고 있는지, 질병 이력이 있는지 등을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었다. 또 고교나 대학을 언제 졸업했는지, 어떤 명절을 쇠는지, 어떤 억양을 쓰는지 등 나이, 종교, 출신국가 등을 유추해낼 수 있는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력서에 사진, 주민등록번호, 키, 몸무게, 부모의 직업·학력까지 적는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직장에서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는 가급적 개인의 인적사항을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선입관을 갖지 않게 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었다.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 나이, 성별, 인종 등이 무슨 상관인가. 물론 사람이 일하는 회사이니 친해지면 비공식적으로 나이나 결혼 여부 등 개인 신상을 대충 알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채용 과정에서는 최대한 그런 요소를 배제하고 해당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지만을 본다.

2년 전부터 인사담당 부장으로 나와 함께 일한 다이애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나는 50살 정도로 생각했는데 한번도 나이를 물어본 일이 없었다. 같이 일하면서 나이가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조직을 원만하게 운영해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가 최근 처음으로 그의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내 추측보다 10살이나 많은 60살이었다.

한국의 직장에서 60살 여성이 자기 아들뻘을 상관이나 동료로 삼고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소수자들이 줄기차게 차별에 항의하고 소송을 내어 고용차별을 철폐하는 법안이 제정되는 등 계속해서 감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정욱 전 라이코스 대표 트위터 @estim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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