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6 19:15
수정 : 2013.05.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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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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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 처음 온 이들은 인도인들의 강한 존재감에 놀라게 된다. 유명 테크기업에 방문해보면 최고경영진부터 핵심 엔지니어까지 인도계가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경우 비즈니스 담당 최고임원부터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핵심 수석부사장들 다수가 인도계다. 워낙 인도계 엔지니어들이 많다 보니 애플이나 인텔 같은 회사의 구내식당에 가면 따로 인도 음식만을 내는 코너가 항상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실리콘밸리는 인도계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민자 출신이 미국 기업의 상층부에 오르려다 부딪히는 장벽을 ‘글래스실링’(유리천장)이라고 하는데 인도계는 이런 벽도 뛰어넘은 듯싶다. 펩시콜라의 시이오인 인드라 누이처럼 인도계로서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진 자리에 오른 사례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의 왕성한 창업정신이다. 지난달 발표된 카우프먼재단의 조사결과를 보니 지난 6년간 미국에서 이민자가 창업한 테크기업 중 32%가 인도계에 의한 것으로 나왔다. 이는 2위 그룹인 중국계(8.1%)부터 8위 그룹인 한국계(2.2%)까지 7개 이민자그룹의 창업 숫자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것이다.
도대체 인도계는 어떻게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흔히 말하듯 우리보다 영어를 잘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높은 교육열 때문일까. 항상 개인적으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한 행사에서 그 실마리를 얻었다.
얼마 전 인도계가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공공도서관에서 테크심포지엄이 열렸다. 지역 고등학교의 테크클럽이 주최하는 학생 대상 행사에 중학생 아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갔다. 유튜브 등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간부와 시이오 등이 와서 강연하는 행사였다. 인도계 학생인 테크클럽 회장이 사회를 맡았는데 자리를 가득 메운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초중고생인 인도계 학생과 학부모였다.
유튜브의 인도계 중역이 온라인비디오의 발전 현황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근처 인도레스토랑의 협찬으로 인도 음식이 제공됐다. 그 뒤 20대 후반의 젊은 인도계 청년이 연사로 나섰다. 알고 보니 그는 고등학생 때 인터넷회사를 창업해서 150만달러에 팔았다는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수업을 받다가 고객에게 전화가 오면 화장실에 가서 응대했다는 등 익살이 넘치는 그의 창업 이야기에 학생들은 완전히 매료됐다. 얼마 전 자신이 세번째로 창업한 회사를 오러클에 매각했다는 그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창업하라”는 말로 어린 학생들을 자극했다. 학생들은 열성적으로 질문을 했고 강연이 끝난 다음 그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같이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아이돌 스타가 따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첨단로봇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사장이 나왔다.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그의 강연과 로봇데모가 끝난 뒤 아이들은 줄을 서서 무대 위에 올라가 로봇을 만져보고 어떻게 하면 로봇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알고 보니 그날 초청된 연사들은 대부분 인도계 학부모들의 친척이거나 친구들이었다. 인도계 학생들은 그들을 마치 삼촌이나 큰형뻘로 여기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엔지니어나 창업자가 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앞서서 성공한 이들이 나서서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성공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 거액의 펀드를 조성하거나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창업 생태계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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