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18 19:23
수정 : 2013.05.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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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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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창업국가이자 혁신이 넘치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미국이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국의 혁신은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혁신기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인류의 생활양식까지 바꾸는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이처럼 독창적인 스타트업이 넘쳐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의성을 북돋우는 교육에서부터 기발한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그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 이런 혁신문화의 밑거름은 활발한 출판문화가 제공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의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시각을 담은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깊이있게 연구한 지식인들의 책이 신간 진열대를 가득 채운다. 매달 새로운 경영이론서는 물론 현직 대통령을 분석해서 쓴 정치분석서들이 계속 나오고, 어떤 인물의 일생을 연구한 흥미로운 전기들이 연이어 출판된다. 추리, 판타지, 로맨스, 공상과학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의 오락물도 계속 나온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성찬이 계속 펼쳐지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재능 있는 잠재 작가들을 열심히 발굴해내어 큰돈을 투자한다. 블로그 등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찾아낸다. 저명한 작가들과는 장기계약으로 유대관계를 강화한다. 정성 들여 만들어낸 책은 적극적으로 마케팅한다. 책 한권 한권을 만드는 것이 일종의 벤처투자다.
언론들도 좋은 책을 띄우기 위해 노력한다. 화제의 책이 나오면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잡지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저자를 초대해 책을 소개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크게 할애해 책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발췌해 소개하는 일도 잦다.
전국의 기업, 학교, 도서관 등에서도 수시로 저자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연다. 강연회 내용은 인터넷으로 모두 공개된다. 엄청나게 바쁘게 활동하는 교수나 언론인들도 짬을 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내어 대중들과 소통한다. 꼭 명문대 출신 교수가 쓴 책이 아니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담고 있으면 팔린다. 좋은 책을 꾸준히 사주는 두터운 독자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린 스타트업>이란 책의 저자인 에릭 리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그가 5년 전 다니던 스타트업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모색할 당시만 해도 그는 29살의 무명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그가 당시 남들과 달랐던 것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경영이론을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끊임없이 블로그로 소통하면서 벤처커뮤니티의 호응을 얻은 그는 여기저기서 강연을 통해 그 이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2011년에 <린 스타트업>이란 책을 출판해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명사가 됐다. 그의 경영이론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 미국 정부까지 가져다 적용하고 있다. 그는 명문대 박사학위 소지자도 아니고 성공한 벤처기업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런 독창적인 책이 풍부한 미국의 출판문화를 보면서 치유(힐링)와 자기계발서에 지나치게 쏠린 한국의 독서문화를 우려한다. 외국 번역서가 많이 팔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저자의 유명세나 간판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과연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 교수가 아니고 미국의 덜 알려진 대학교수였다고 하더라도 정의론이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
책 문화에는 그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좀더 다양한 분야의 독창적인 생각을 담은 책들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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