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3 19:09
수정 : 2013.06.0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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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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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회사의 행사에 갔다가 음식배달 주문용 앱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회사 ‘우아한 형제’의 회사 소개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회사 김봉진 대표는 이번이 미국 초행길이라고 하고 동행한 이승민 전략기획실장도 겨우 두번째 미국 방문이라고 해서 솔직히 이들이 발표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버벅대더라도 잠재적인 미국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번 해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그런데 내 걱정은 기우였다. ‘우아한 형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스마트폰 문화부터 뭐든지 주문만 하면 번개처럼 가져다주는 한국의 음식배달 문화까지 앱 개발 배경설명부터 시작해 한국인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자신들의 앱이 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 결과 오히려 같이 발표한 다른 미국 벤처기업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흔히 유행하는 미국의 인터넷서비스를 따라했다면 별로 관심을 못 받았겠지만 한국 시장에 맞는 자신만의 서비스를 개발해낸 것이 오히려 미국 투자자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일을 통해 내가 한국 벤처기업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발표가 끝나고 겸손해하는 김 대표에게 “앞으로 좀더 해외에 자주 나가고 견문을 넓히라”고 이야기했다. 꼭 해외진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 뒤 식사를 하면서 한 샌프란시스코의 현지 벤처 시이오와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한국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너무 한국 시장밖에 모르고 국외 시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문한 회사마다 거의 100% 한국인 직원만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니 더욱 해외 시장을 이해하고 진출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사실 얼마 전에 만난 한 일본인 벤처투자가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한국의 벤처기업 실력이 많이 올라간 것 같은데 너무 시장을 한국 안으로만 좁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큰 시장인 미국에 자리잡고 있고 영어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실리콘밸리의 특성상 인종·국적·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데 있다. 이미 회사 안의 모습이 ‘유엔’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따로 글로벌을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벤처기업인들도 한층 더 이런 글로벌 환경에 노출되고 다양한 외국인들과 교류해야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물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 정부가 진행하는 ‘스타트업 칠레’라는 프로그램에 주목하고 싶다. 스타트업 칠레는 세계의 벤처기업 중 신청을 받아 선발된 기업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회사를 6개월간 운영할 수 있도록 4만달러와 비자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세계 곳곳의 똑똑한 인재들을 칠레로 불러모아 교류시켜 자국 벤처업계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2010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미디어들의 관심을 모아 70여개국 1600여 벤처기업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도 ‘스타트업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세계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모아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 창업가들이 세계의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면 국외진출 성공 사례는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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