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5 18:40
수정 : 2013.07.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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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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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일이 있다. 신문 부고와 전기에 관한 문화를 보며 한국과 미국 사회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느꼈다.
부고는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리는 것이나 그러한 글”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부음’, ‘궂긴소식’(<한겨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한국 신문 부고란의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따른다. “김○○ ××기업 전무 부친상=○○일 ○○시 ○○병원, 발인 ○○일 ○○시 전화번호”의 형식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부고 기사인데 정작 고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한겨레>는 예외적으로 고인 이름을 적는다.) 고인이 현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과거에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그냥 자식들의 이름 다음에 ‘부친상’, ‘장인상’ 같은 식으로 처리된다. 특히 평범한 주부로 평생을 살아온 분의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고인의 이름 없이 ‘모친상’ 아니면 ‘장모상’, ‘조모상’으로 나온다. 자식들의 이름만 직업이나 직함과 함께 열거된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듯 지나치던 이런 부고란의 문제점을 알아챈 것은 미국 신문의 부고란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여기서 부고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그 자손들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로다 레인버그. 82. 루이스의 부인. 리사와 데이비드의 엄마. 벤저민, 리오라, 시라의 할머니. 그녀는 따스하고 온화한 영혼, 낙천적인 성격, 유머, 호기심, 강건함,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부고의 목적이다. 더 긴 부고 글에는 고인의 인생 역정을 간결하게 소개한다. 자손들은 이름만 나올 뿐, 직업이나 직함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고인이다. 부고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사랑이 느껴진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와서 신기하게 느낀 것이 전기 장르의 인기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전기를 어릴 때나 읽는 위인전 같은 고리타분한 책으로 여겼다. 그런데 미국에서 전기나 자서전은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예술인,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읽히는 인기 장르다. 스티브 잡스 전기처럼 밀리언셀러인 전기가 많다. 서점에 가면 전기만 진열한 큰 서가가 따로 있고 평생 전기만을 쓰는 전업 작가들이 많다. 이런 전기들은 한 인물의 삶을 단순히 미화하기보다는 그 시대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면서 공과 과를 균형있게 서술해 독자가 한 인물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왜 이렇게 전기가 인기가 있을까? 전기를 탐독하는 한 지인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책은 딱딱해서 읽기가 어려운 데 반해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흥미롭게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옛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 보는 것은 독자에게 지혜와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전기를 통해 일종의 멘토를 찾게 되는 것이다. 10여년간 링컨을 연구한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은 2005년 <권력의 조건>이라는 링컨 전기를 펴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고 2009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는 이 책에서 라이벌을 끌어안는 링컨의 리더십에 자극받아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영입했다.
이런 서구의 문화에 비해 우리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의 부고도 마치 문상 올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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