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3화>
1810년대의 런던은 산업혁명에 따른 인구밀집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가내수공업이 몰락하자 거대 공장의 메카인 런던으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동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때문에 공장 폐수로 악취를 풍기는 템스 강 주변에는 수많은 빈민촌이 형성되었고, 매일 밤안개와 섞인 먼지들이 자욱한 스모그를 만들어냈으며, 그 속에서 수백만 마리의 쥐 떼가 빈민촌의 어두운 뒷골목을 활보하며 썩은 음식을 찾아 무리지어 다녔다. 소매치기와 거지들, 창녀와 주정뱅이들이 판을 쳤으며, 하루에도 수십 건씩 강도와 절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템스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영아의 시체 한두 구 정도는 구경거리 축에도 못 끼는 시대였다. 하버 박사는 역사학자로서 이 시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하버 박사는 <19세기 초, 빛과 어둠의 도시 런던>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토마스 하버 박사의 이 논문에 따르면 당시 런던의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열네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에 달하는 육체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공장주들 사이에서는 이런 악덕 경영이 관행처럼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계는 구매비용뿐 아니라 유지비용도 비싼 물건이었다. 일단 기계를 들여놓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공장주들의 생각이었다.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쌌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19세기 초 런던은 자연스럽게 기계 중심의 사회로 변모해 갔다. 자본가들에게 공장 노동자는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고장이 나면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경영에 불만을 가진 자나, 산업재해로 불구가 된 자들은 그 자리에서 해고를 당했다. 교체할 부품은 얼마든지 있었다. 공장주들은 고아원 출신의 미성년 노동자들에게 값싼 임금을 주고 기계를 돌렸다. 피로에 곯아떨어진 미성년 노동자들을 깨우기 위해 아침마다 창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니는 직종까지 생겨났다. 네드 러드의 일기에 등장하는 ‘기상나팔 로저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여섯 살짜리 여아가 기계를 돌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고아들은 영양실조나 과로로 죽어갔다. 그렇지 않으면 불구가 되어 공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수많은 고아들이 공장에서 도망쳐 빈민가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절도나 강도, 매춘이나 구걸이 아니면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소녀 낙태가 늘어났다. 하수구에 모인 쥐들이 영아의 시체를 뜯어먹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소년들은 일찍부터 술을 배웠다. 수입이 좋은 날은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지냈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무슨 영웅담처럼 떠벌리며 주정을 부리는 일이 이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이러한 악조건들로 말미암아 당시 영국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놀랍게도 열일곱 살 안팎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었다. 거대 공장과 기계의 출현은 성인 노동자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기계를 돌리는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었다. 그래서 공장주들은 전문 기술을 가진 성인 남성 노동자보다 미성년자나 여성 노동자를 선호했다. 적은 임금으로 일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루기가 쉬웠다. 기계의 등장은 작업의 질뿐만 아니라 생산량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열 명이 하던 일을 두 명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성인 남성 노동자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런던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19세기 초 런던의 빈민가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하지만 공장을 소유하고 있던 자본가들은 지옥과 동떨어진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다.
이에 비해 극히 소수의 자본가들은 거대 기계를 돌림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해 나갔다. 일명 자본 귀족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안락한 환경 속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극소수의 선택받은 인간들이었다. 연일 파티가 열렸고, 사교장마다 수십 대의 화려한 마차가 줄지어 도착했다. 고가의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입장한 이들에게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백여 종에 달하는 고급술이 제공되었다. 거기서 자본 귀족들은 밤새도록 춤을 추며 환락을 즐겼다.
음성적인 성격의 고급 클럽문화가 성행한 것도 이 시기였다.
클럽들은 교외의 저택 같은 은밀한 장소를 이용했다. 홀 중앙에 있는 무대에서 클럽 전속의 고급 창녀가 외설적인 춤을 추었고, 이 춤이 끝나면 뚜쟁이가 등장해 가면을 쓰고 있는 손님들을 상대로 노예 경매에 들어갔다. 고급 창녀들의 몸값은 인기 여하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입찰 품목에 상관없이 경매장의 분위기는 언제나 과열 양상이었다. 누구에게 얼마에 낙찰되느냐는 것은 여흥을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이 퇴폐적인 놀이의 핵심은 사람을 사고판다는 행위 자체에 있었다. 경매에 참석한 자본 귀족들은 돈의 전능한 위력에 흥분했고, 그래서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아무 망설임 없이 불렀다. 이렇게 해서 낙찰된 고급 창녀 한 명의 하룻밤 몸값은 당시 공장 노동자의 삼십 년 치 임금에 육박했다.
이어서 토마스 하버 박사는 국가 산업구조의 재편에 따른 사회 윤리 체계의 전면적인 전복 양상을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산업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거대 공장은 가내수공업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곧 기존 가치관의 해체로 이어졌다. 가내수공업에서는 인력의 확충을 위한 대가족제가 필수적인 요건이었다. 가장의 권위와 전통 가업에 대한 긍지, 그리고 가족 성원 간의 긴밀한 혈연적 유대가 중요시되었다. 하지만 가내수공업의 몰락과 함께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가족관 역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흩어졌고, 가업에 대한 긍지 역시 희박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공장 지대가 밀집해 있는 런던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나타난 현상들이었다. 도시 인구의 급증은 인간의 희소성을 하락시켰다. 모든 가치기준이 돈에 의해서 결정되고 분류되었다. 이에 따라 인본주의가 고사했으며,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사상이 사회 저변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의 양극화 현상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과거 봉건 귀족들이 법률과 제도로 민중을 탄압했다면 자본 귀족들은 그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자본가들의 손에는 노동자들의 생계라는 막강한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 무기를 손에 든 자본 귀족들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반면 공장 노동자들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박탈당한 채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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