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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8 10:24 수정 : 2013.05.29 09:53

강태식 소설 <7화>



이제 더 이상 제니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제니는 나의 모든 것이다. 가끔 제니가 멀리 떠나가는 상상을 한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빈 껍데기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가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제니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슬픈 꿈이다. 몸이 점점 줄어든다. 어느새 아기가 된 나. 더러운 강보에 싸여 길바닥에 버려져 있다. 아무리 울어도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니도 나를 그렇게 버리고 가버릴까? 두렵다. 공포가 나를 지배한다.

네드 러드는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그 집착은 공포로 변했고, 공포는 다시 절대적인 복종으로 탈바꿈한다. 1810년 7월 2일의 일기다.

제니와 함께 있으면 내가 얼마나 작고 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제니의 말은 언제나 옳다.

“이런 네드! 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거야. 이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 줄 아니?”

제니에게는 실수가 없다. 제니는 완벽한 존재다.

“넌 정말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니는 모든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니? 그럼 나를 돌려.”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제니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일 뿐이다. 그럼 나는 행복해진다.

제니가 지배하고 네드가 거기에 복종하는 주종관계가 형성되었다. 네드는 충실하고 부지런한 하인이었다. 아니, 어쩌면 기계의 많은 부품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말없이 기계를 돌리는 네드. 영혼을 빼앗긴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네드. 그런 네드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기계에 부착된 소모품의 하나일 뿐이었다.

여기서 토마스 하버 박사는 자신의 오랜 친구인 다니엘 한슨 박사를 떠올렸다. 다니엘 한슨 박사는 문명의 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고집하는 역사학자로 유명했다. 언제나 중절모에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다니엘 한슨 박사는 학계에서는 괴짜로 통했지만 토마스 하버 박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자네는 참 재미있는 친구야.”

이게 다니엘 한슨 박사에 대한 토마스 하버 박사의 평가였다. 둘은 체스의 호적수이기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공원 벤치에 앉아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번은 체스의 말을 옮기던 다니엘 한슨 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문명의 발전은 청동기에서 멈춰야 했어. 철기의 시작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거지. 천국이 지옥으로 변했으니까.”

다니엘 한슨 박사는 특히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산업혁명을 다른 말로 하면 뭔지 아나? 괴물의 탄생이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말일세.”

“그 괴물이 자네의 체스 실력까지 꿀꺽한 모양이군. 체크메이트야.”

네드 러드의 일기를 읽는 동안 토마스 하버 박사는 다니엘 한슨 박사의 의견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산업혁명은 괴물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제니라는 괴물이 네드 러드라는 소년을 잡아먹고 있었다. 1810년 7월 18일의 일기에는 이러한 모습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나를 돌려!”

제니가 명령했다.

“더 빨리, 더 빨리! 다른 건 생각하지 마.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의 명령에 복종해. 최대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움직여. 절대로 한눈팔면 안 돼. 넌 끊임없이 만들고 생산하면 되는 거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너는 행복해질 수 있어.”

이제 제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더 이상 이름도 불러주지 않는다. 화가 난 듯 빠른 목소리로 명령하고 꾸짖고 질책할 뿐이다.

“네드, 좀 더 열심히 할 수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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