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8화>
같은 해 8월의 일기를 보면서 토마스 하버 박사는 참을 수 없는 연민에 괴로워했다. 갑자기 찾아온 거식증, 부족하고 초라한 식사 뒤에 먹은 걸 그 자리에서 토해내는 네드 러드의 모습……. 위에서 일어나는 경련과 거부반응 때문에 어린 네드 러드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8월 5일의 일기에서 네드 러드는 ‘몸이 음식을 밀어내는 것 같다’고 적고 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8월 8일에는 ‘배가 고프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다시 사흘이 흐른 8월 11일의 일기를 보면서 토마스 하버 박사는 슬픔과 연민이 경악으로 변하는 충격을 경험했다. 네드 러드는 공장에서 쓰는 기름을 먹고 있었다. 옆에 있던 석탄도 한 입 깨물어 먹었다. 입술이 까맣게 변했지만 허기와 갈증이 사라졌다. 토하는 일도 없었다. 그때부터 네드 러드는 음식 대신, 공장에 있는 기름과 석탄을 몰래몰래 훔쳐 먹기 시작했다.
8월의 일기를 다 읽고 난 하버 박사는 콧수염을 만지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네드 러드에게 일어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은 하나였다. 네드 러드는 기계에 동화되고 있었다. 자의에 의해서든, 제니의 명령에 의해서든 네드 러드는 기계의 부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네드 러드는 점점 기계가 되어갔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해 9월, 기름과 석탄을 먹으며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네드 러드는 결국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공장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영양실조와 과로누적이 원인일 거라고 토마스 하버 박사는 생각했다. 당연히 자리에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공장에 나가지도 못했고, 기계를 돌릴 수도 없었다. 네드 러드는 하루 종일 낮은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 지냈다. 딱딱하고 더러운 침대와 그곳에 누워서 혼자 죽어간다는 생각이 어린 네드 러드를 괴롭혔다. ‘외로움은 갈증이나 배고픔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그 즈음 네드 러드는 자신의 일기에 적고 있다.
1810년 9월 23일, 기록의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그날은 한 달 동안 병석에 누워 있던 네드 러드에게 기적이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늦은 밤, 동그랗게 켜진 불빛 아래 기운을 차린 네드 러드는 멀리서 울려오는 주정뱅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의 현기증과 차가운 밤공기, 지독한 런던의 안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름과 석탄이 먹고 싶었다. 무엇보다 제니가 보고 싶었다. 네드 러드는 공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빈민가의 뒷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템스 강의 악취가 밀려왔다. 네드 러드는 그 길을 따라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거친 사내들의 고함소리와 손님을 부르는 매춘부들의 아우성이 늦은 밤, 안개 낀 템스 강 주변에 가득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공장은 변한 게 없었다. 환하게 켜진 불빛,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지만 모든 게 낯설었다. 한참동안 문 앞에 서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망설였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줄까? 두려웠다.
그래서 네드 러드는 공장 뒤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창문이 나 있었다. 네드 러드는 까치발을 들고 창문 안을 훔쳐보았다. 눈부신 공장 불빛이 네드 러드의 눈을 시리게 했다. 기계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뿌연 먼지와 기계에서 나는 소음도 예전 그대로였다. 단두대 데이번드 씨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드 러드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제니를 찾았다. 제니도 그대로였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니는 여전히 양말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네드 러드 또래의 어린 소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니를 돌리고 있었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네드 러드가 느꼈을 충격과 두려움을 떠올렸다.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이 불러일으키는 공포. 강보에 싸인 채 버려진 아기의 울음소리와 공장 안을 훔쳐보는 네드 러드의 절망에 찬 얼굴이 한순간 토마스 하버 박사의 머릿속에 각인처럼 새겨졌다.
공장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말없이 어두운 저 편을 응시하는 네드 러드.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공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곧 공장의 불도 꺼졌다. 공장 문을 닫은 단두대 데이먼드 씨가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네드 러드는 공장 안으로 숨어들었다. 어린아이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개구멍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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